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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생존자 증후군

정지은 | 38호 (2009년 8월 Issue 1)
‘생존자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전쟁, 천재지변, 비행기 추락과 같은 큰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일컫는 단어다. 금융위기로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정리해고에 들어가면서 생존자 증후군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집을 줄여 조직을 더욱 효율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남아 있는 조직원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아 있는 조직원들이 생존자 증후군에 시달린다면 그 기업은 큰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 생존자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심적 고통은 크게 2가지다. 첫째, 동료가 해고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도와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다. 둘째, 자신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연구 결과 구조조정 이후 생존자들의 80%가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도가 심해지면 일터에서의 희망과 전망 모두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생존자 증후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단계는 ‘정신적 혼돈기’다. 나도 결국 해고당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에 빠져 정신적 불안이 심화되는 시기다. 실직한 동료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고, 사내 소문에 매우 민감해지며,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쉽게 짜증을 낸다. 쉽게 피로해지며, 기억력과 집중력도 눈에 띄게 떨어진다.
 
2단계는 ‘정신적 억압기’ 또는 ‘놀라운 적응기’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더는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자신을 억압하거나, 반대로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회피해 일시적으로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게 이 시기의 특징이다. 최대한 상사의 지시에 순응하려 하고, 감봉이나 휴가 반납 등도 감수하며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겉으로만 온순할 뿐, 사실은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매우 위험한 상태다.
 
여기서 더 악화되면 3단계인 ‘정신의 황무지화’로 간다. 희망, 감정, 열정, 전망이 전혀 없는 상태다. 어떻게든 이 조직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썼던 자신에 대해 모멸감을 느낀다. 동시에 동료가 해고를 당해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고, 실직에 대한 공포도 사라진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와 정신적 마비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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