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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계획 없는 행동이 보약

신동엽 | 31호 (2009년 4월 Issue 2)
새로운 경쟁우위를 끊임없이 남보다 먼저 창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21세기 초경쟁(hyper competition) 환경은 워낙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아 기업들이 정확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울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따라서 21세기 기업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잘 대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와 관련, 경영학의 조직 이론 분야 거장인 미국 미시간 경영대학의 칼 와익 교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에야 행동하던 20세기 산업사회적 사고방식 자체를 버리라고 권고한다. 큰 방향이 정해지면 계획 없이도 신속하게 행동부터 하라는 주장이다.

계획 없이도 행동할 수 있어야
와익 교수는 기업이 항상 명확한 목적이나 계획을 미리 세우고 행동하진 않으며, 계획 없는 행동이 반드시 비합리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해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 창조적 혁신을 추구할 때에는 오히려 행동이 계획을 앞서는 방식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와익 교수의 이런 역발상적 주장은 ‘계획 수립(for- mulation) 후 실행(implementation)’이라는 전략 프로세스를 당연시해온 경영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물론 지난 100여 년간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철저한 상세 계획을 세워 치밀하게 준비하는 ‘Plan-Do-See’라는 전통적 경영 프로세스를 신봉해온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익 교수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행동 과정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사전에 의도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사례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하고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방식을 따르면 행동의 구체적 목적이나 논리, 계획 등은 오히려 행동하는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나타난다. 즉 먼저 행동을 한 후에 사후적으로 계획을 선택하는 의사결정이 나타난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를 ‘사후적 합리성(posterior rationality)’ 이론이라고 부른다. 또 실무적으로는 행동(doing)이 계획(thinking)보다 먼저 나타난다 해서 ‘Doing First’ 경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비되는 전통적 프로세스는 계획을 세운 다음에 행동한다는 뜻에서 ‘Thinking First’ 경영이라고 부른다.
 
창조 경영에는 Doing First가 필수
20세기 산업사회에서 계획 없는 행동은 비합리적이며 주먹구구식 경영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와익 교수는 언뜻 무모해 보이는 ‘Doing First’가 오히려 꼭 필요할 때가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불확실성과 급변성이 결합한 창조적 혁신의 상황이다. 21세기 창조 경영의 핵심인 창조적 혁신은 기업들이 기존 상품이나 사업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효율성이나 품질을 기반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을 최초로 만들어내는 경쟁이다. 그런데 이미 존재하던 상품이나 사업과는 달리 창조적 혁신은 그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시도를 최초로 하는 것이므로 치밀하고 정확한 사전 계획을 세우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 정도 사전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시장을 독점하는 창조적 혁신 경쟁에서 상세 계획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끌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창조적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행동하기 전에 미리 100점짜리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또 창조적 혁신 경쟁의 시간적 급박함을 감안할 때, 상세 계획을 수립한 후 행동하려다 타이밍을 놓치면 100점은커녕 0점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큰 방향이 정해지면 즉시 신속하고 과감하게 다양한 시도를 하고, 구체적 계획은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견해 나가는 ‘Doing First’가 훨씬 더 합리적이다.
 
최근 창조와 혁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실제로 ‘Doing First’ 경영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선도 기업들은 여러 대안들 중 무엇이 최선일지 알 수 없을 때, 다양한 방안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면서 이를 수시로 재평가해 역동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리얼 옵션(real option) 전략을 도입했다. 또 환경이 변할 때마다 수시로 계획을 수립하거나 수정하는 리얼타임 기획(real-time planning)을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는 수시로 급변하는 환경에서 연차 기획같이 일정 기간마다 전략을 수립하는 전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Doing First
경영의 요건
‘Doing First’를 통한 창조 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2가지 요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 번째,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도 모든 의사결정에 ‘Doing First’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미 충분한 경험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존 사업을 추진할 때는 당연히 최대한 자세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 행동을 하는 ‘Thinking First’ 방식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환경이 느리게 변해서 다양한 대안들을 심사숙고해 계획을 세울 여유가 충분히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즉 와익 교수의 주장은 항상 ‘Doing First’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사안별로 불확실성과 급변성의 정도에 따라 ‘Doing First’와 ‘Thinking First’를 차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Doing First’ 경영의 두 번째 요건은 창조적 혁신의 불확실성을 이겨내기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행동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일시적 실패나 시행착오의 용인이다. 20세기 산업사회는 대량 생산과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시스템 경쟁의 시대였으므로, 작은 시행착오로도 전체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초경쟁 환경이 요구하는 창조적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일시적 실패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20세기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작은 실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업들은 절대 창조적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잭 웰치 전 회장은 ‘실패를 절대 처벌하지 말라(Don’t punish failure)’는 명제를 GE의 가장 중요한 경영 원칙 중 하나로 삼았다. 3M은 심지어 창조적 혁신을 위한 과감한 행동 과정에서 발생한 ‘합리적 실패(well-intended failure)’에 대해 인사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며, 상당한 예산을 들여 실패 축하 파티까지 열어준다. 창조 경영 시대가 도래한 지 이미 1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20세기 산업사회적 마인드에 사로잡혀 조직 구성원들의 조그만 시행착오나 실패를 철저하게 처벌함으로써 창조적 혁신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시대착오적 경영자들은 와익 교수의 교훈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편집자주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학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경영 사상가들의 지혜와 통찰을 전하는 ‘경영 거장 탐구’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달성한 거장들은 인류의 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했지만, 오로지 학술 연구에만 매달린 탓에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거장들의 통찰은 첨단 지식정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한 차원 높은 지식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 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 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를 비롯해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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