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이론 종합

“제안 실행률 80% 이상으로 높여라”

양동훈 | 29호 (2009년 3월 Issue 2)
미국 기업들이 제안 제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이다. 당시 전시 생산 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던 미국 정부는 국무성 지휘 하에 제안 제도 도입을 적극 장려했다. 일본 역시 2차 대전 후 미군 점령 하에서 미국의 경영 방식을 전수받으며 제안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제안 제도는 기업보다 정부가 먼저 도입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제안 제도 도입은 1960년을 전후해 공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1970년대에야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이렇듯 제안 제도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경영 참여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업에서는 경영자나 직원 모두의 관심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다. 최근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종업원의 연간 평균 제안 건수는 0.5개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직원의 연간 제안 건수가 1개 미만인 기업이 전체 기업의 25% 이상이다.
 
제안제도가 실패하는 이유
제안 제도가 왜 이렇게 먼지 쌓인 케케묵은 제도로 전락한 것일까. 제안 제도는 종업원의 숨겨진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이들을 경영 현장에 참여시켜 작업 동기를 높이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제안 제도를 도입하기는 쉬워도, 운영을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제안 제도 운영과정에서는 실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제안 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 보니, 종업원들은 제안 제출을 형식적으로 생각하거나 업무 외적인 부담으로 여긴다. 제안의 절차와 양식이 복잡하거나, 제출 자격에 제약이 뒤따라 제안 행위 자체가 위축되는 일도 많다.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제안 이외에는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대표적 제약이다.
 
제안을 실행에 옮기는 절차 또한 많은 문제가 있다. 우선 제안 평가를 맡은 위원회가 수많은 제안들을 심의하고 평가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제안자는 자신의 제안이 어떠한 평가를 받는지 목 빠지게 기다리지만, 평가가 조속히 이뤄지지 않아 제안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사례가 태반이다. 특히 제안 평가를 분기 말에 집중적으로 몰아서 할 경우, 신속한 제안 심의는 불가능하다.
 
제안 평가자의 전문성도 문제다. 전문적 평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제안 심의 위원회에 있다면, 평가 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어떤 직원이 낸 제안이 선택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해당 직원에게 그 이유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평가 결과를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이런 피드백이 없을 경우, 해당 직원은 제안 심의 자체에 대해 불신을 가진다.
 
제안의 실행 과정에서도 적잖은 문제가 발생한다. 경영진이 제안을 실행하라고 지시해도, 이를 수행해야 할 부서가 외부 부서의 제안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채택된 제안에 대한 국내 기업의 실행률은 상당히 낮다. 실행률 50%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30%에 이른다. 제안이 뽑혀도 이것이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을 경우, 제안 제도에 대한 직원의 신뢰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설사 실행이 되더라도 실행 후 제안으로 인한 능률 향상이 어느 정도인지, 제안자의 실행 계획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지 등 사후 점검도 부족하다. 제안 실행에 대한 평가 자체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다. 사후 점검이 이뤄지지 못하면 제안 제도는 과도한 추가 업무만을 발생시키는 형식적인 제도로 추락하고 만다.
 
제안으로 종업원이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나 비금전적 동기 수단도 미약하다. 많은 시간을 두고 고안한 제안에 대해 충분한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면, 제안이 직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하다. 제안의 질보다 양에 치중해 조직원들을 자극하는 문화도 문제다. 제안 건수만 늘린다고 제안 제도가 활성화되지는 않는다. 질이 높은 제안은 이를 생각해낼 때도, 구체화할 때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질 높은 제안에 대한 보상이 적으면, 질은 낮지만 건수만 많은 제안들이 남발되게 마련이다. 제안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제안의 건수뿐 아니라 질을 끌어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제안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제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와 조직 문화를 개혁하려는 최고 경영층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직 문화가 하향적 지시 중심일 경우 제안 제도의 활성화는 근본적으로 어렵다. 제안 제도의 속성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적 의사소통인데, 이는 최고경영자(CEO)의 행동이 바뀌기 전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즉 제안 제도의 가장 큰 제약인 종업원들의 소극적 태도는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조직 문화의 부산물이다.
 
3M과 로열 더치 셸의 성공 비법
그렇다면 제안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기업들의 사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일단 1인당 제안 건수가 연간 40건 이상이고, 채택된 제안의 현장 실행률이 80% 이상이면 세계적 수준의 제안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3M과 로열 더치 셸은 제안 제도를 기업의 전략적 도구로 발전시켰다.

잘 알려진 대로 3M은 세계적인 아이디어 기업이다. 투명 접착제, 포스트잇, 피부암 치료제 알다라 크림까지 다양한 형태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3M이 1902년 광산회사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생산업체인 노키아가 산림 벌목회사였던 것처럼, 3M은 지극히 전통산업에서 최첨단산업으로 진입한 대표적 기업이다.
 
오늘날의 3M이 태동한 계기는 1925년 3M의 연구원 리처드 두드가 고안한 마스킹 테이프다. 또 1940년대 2차 대전 당시 방위산업용 혁신 제품을 출시하면서부터 3M의 아이디어 사업화는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은 아닐지라도, 종업원들의 머리를 맞대고 고안한 신제품에서 오늘날의 3M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창의적인 기업이라도 몇 개의 혁신 제품을 출시한 이후 시장에서 사라질 때가 많다. 그러나 3M은 아이디어 제안을 끊임없이 창출해내는 경영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직원들의 적극적인 제안을 독려한 결과다.
 
3M이 종업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뽑아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제안 제도를 위한 창의적 조직 문화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3M은 제안 제도를 전략적으로 도구화하기 위해 10%, 15%, 30%의 3원칙을 경영 방침으로 설정했다. 즉 △최근 1년 내에 개발된 신제품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여야 하고 △직원들은 업무 시간의 약 15%를 새로운 관심 분야에 쓸 수 있으며 △연간 총 매출의 30%는 최근 4년 이내에 출시된 신제품에 의해 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3M은 연간 매출액의 10%를 연구 개발비로 지출하며, 기술 연구원의 연구 시간 중 15%를 본인이 직접 선택한 프로젝트에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혁신 제품 프로젝트가 성과로 연결되지 않아도, 종업원은 소위 ‘밀주 제조(bootlegging)’라 불리는 자신만의 추진을 시도할 수 있다. 특히 3M은 종업원이 아이디어 창출 과정에서 실수를 해도 적극 용인한다. 3M에서는 올바른 생각을 가진 종업원이 저지르는 실수를, 경영진이 종업원에게 지시하면서 생긴 실수보다 훨씬 더 좋은 일로 평가한다.
 
3M은 제안 제도에 대한 보상을 할 때도 금전적 보상보다 비금전적 보상을 더욱 중요시한다. 제품 혁신에 기여한 아이디어 제안자는 장기 근무나 승진 특혜를 보장받는다. 6단계로 이뤄진 각종 명예 상도 있다. 최고의 명예는 ‘3M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칼튼 소사이어티 자격을 받는 것이다. 제안자가 받는 상징적 보상이 단순한 금전적 보상보다 더 큰 효과를 창출해낸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3M의 리크루팅 전략 또한 남다르다. 입사 단계에서부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종업원을 선별해 제안 제도 활성화의 바탕을 조성한다. 근무 형태는 변동 근무제로 유지한다. 종업원들이 각자의 이름만 부르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 관리자와 종업원 사이의 낮은 신분 격차 또한 제안 제도가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이다. 제안을 위한 내부 교육도 활발하다. 3M에서는 하루에 평균 4.5회의 세미나 혹은 심포지엄이 열리며, 외부 전문가의 발표도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3M 직원의 아이디어 창안 과정에는 5, 6명으로 이뤄진 다기능 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 팀은 마케팅, 기술 개발, 생산, 영업 등 상품 개발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여러 부서에서 합류해 만들어진다. 제품 챔피언 스폰서 제도를 통해 각 사업부의 관리자가 태스크포스팀(TFT)의 후원자로서 각종 지원을 담당한다.
 
3M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제안 제도의 활성화가 단순히 제도적 설계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안 제도를 설계해도, 이 제도의 성공을 위한 조직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정착시킬 수 없다.
 
네덜란드 정유업체 로열 더치 셸의 사례도 독특하다. 셸은 전 세계에서 10만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140개국에서 영업을 하는 거대 기업이다. 즉 셸은 3M과 같이 혁신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닌 대표적인 굴뚝 기업이다.
 
셸은 이전까지 활용하던 구식 제안함 제도를 폐기하고, 1996년 새로운 제안 제도인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도입했다. 이는 일종의 사내 벤처 캐피털 역할을 수행하는데,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직원 중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 이를 제안 심의 패널에 제출한다. 1차 제안 심의 패널은 가능성 있는 사업화 제안을 심의한 후, 선별적으로 제안자를 초청해 아이디어를 발표하게 한다.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제안은 수정을 거쳐 다시 2차 제안 심의 패널로 올라가며, 이때 사업에 관련된 임원과 전문가들이 패널에 참여해 타당성을 평가한다.
 
사업화 제안이 1차와 2차 심의 패널을 모두 통과하면 파일럿 프로젝트 계획이 세워진다. 해당 파일럿 사업의 재정 지원은 모두 게임 체인저 안에서 이뤄지며, 해당 사업에 대한 정기 평가도 뒤따른다. 새로운 제안 제도를 도입한 후, 셸은 연평균 150개의 사업화 제안을 받고 있다. 채택 제안에 따른 수입도 수천만 유로가 넘는다. 셸은 엄정하고 정밀한 평가를 위해 제안 평가만을 전담하는 조직도 두고 있다.

셸의 제안 제도는 3M과 달리 사업화가 가능한 제안에 집중돼 있다. 제안자 역시 전체 종업원이 아니라 사내 연구 인력이 대부분이다. 즉 제안 가능성이 높은 일부 종업원들을 중심으로, 성공 가능성이 큰 소수의 아이디어를 집중적으로 뽑아내는 것이다. 제안 제도가 직원들의 경영 참여를 위한 제도라고 해서 반드시 전 종업원을 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3M이나 셸의 예를 보면, 국내 기업들이 제안 제도를 산업화 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 수 있다. 요즘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시도하는 종업원 권한 부여, 경영정보 시스템 구축, 지식경영 등의 화두는 결국 제안 제도의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바로 지금 제안 제도가 중요한 이유
현 시점에서 제안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제안 제도는 모든 경영 참여 제도의 뿌리 역할을 한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사적인 직원 참여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국내 기업은 종업원 경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성과 배분제, 이윤 분배제, 원가절감 혁신, 팀제를 도입하고 있으나, 이에 앞서 제안 제도 활성화를 통해 종업원들의 호응과 동기를 이끌어내는 게 훨씬 시급한 과제다.
 
둘째, 제안 제도는 종업원들이 가지고 있는 현장의 숨겨진 지식들, 즉 암묵지를 외부로 표출하는 도구다. 암묵지는 생산 및 서비스 과정을 혁신할 때 큰 역할을 한다. 관리자가 알 수 없는 수많은 현장 지식과 조직의 학습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않으려면 제안 제도가 꼭 필요하다.
 
셋째, 제안 제도는 상향적 조직 문화의 형성을 촉진한다. 모든 경영 혁신은 경영자의 하향적 혁신 의지와 종업원들의 상향적 동참 의지가 결합될 때만 가능하다. 제안 제도는 종업원들의 상향적 지원 의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경영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효과적인 제안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요인은 시간이 흘러도 과거와 같다. 즉 제안 제도의 성공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DBR TIP ‘효과적인 제안 제도 구축 요건’ 참조)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제안 제도의 설계가 아니라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다. 어느 원로 학자는 “현대 기업의 99%는 혁신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를 실행하지 못해 혁신에 실패한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경제가 가변적이고 장기 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종업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이들의 지원을 확보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이다. 제안 제도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경영 혁신의 뛰어난 촉매제로 재평가받아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제안 제도를 통해 성공적인 혁신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DBR TIP] 효과적인 제안 제도 구축 요건
 
- 종업원 제안 제도 활성화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확고한 의지를 공표해야 한다.
- 제안 제도와 함께 종업원 참여에 기반한 혁신적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 제안의 유형, 방법, 제출 과정에 대한 제도적 설계를 하되, 제안이 쉽게 이뤄지도록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 제안 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 제안 참여를 통한 성공 사례를 발굴하고, 종업원들의 발표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 제안의 평가가 신속하고 적절하게 이뤄지도록 한다.
- 중간 관리자는 제안의 촉진자이자 제안 실행의 지원자로서 제안 과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 제안 평가가 신속하고 적절하게 이뤄지도록 전사적인 심의 평가 기구를 만들고, 제안 평가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구체적으로 실시한다.
- 채택된 제안에 대한 실행 과정을 심의하고, 그 효과를 측정한다.
- 제안의 양적 확대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질과 양의 균형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제안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한다.
- 제안에 대한 종업원 보상 방법을 결정하되,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비금전적 보상도 적극 활용한다.
- 채택된 제안의 실시율을 높이고, 그 결과를 전 종업원에게 알린다.
- 제안 심의와 실행을 위한 재정 자원을 확보한다.
- 제안 제도와 다른 경영 혁신 제도와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제안 제도를 기존의 혁신 제도와 결합해 시행한다.
 
필자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인적 자원 및 노사관계 분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 연구 분야는 인사 관리, 노사관계 등이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