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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것도 죄인가요

전재영 | 24호 (2009년 1월 Issue 1)
Q 30대 중반의 과장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지
는 6개월쯤 됐습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과장 직급으로 일하고 있지만 제가 맡은 업무는 단순·반복적인 것으로, 굳이 박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고학력자를 뽑아서 왜 이런 일들을 시키는지 종종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의 팀장은 직급은 저보다 높지만 나이가 아래여서인지 저더러 ‘박사’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더군요. 박사를 뽑아 놓고 박사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충고로 받아들이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저도 한국의 조직문화가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들이댈 때는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단지 입사 경력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보잘것없는 일들만 챙기라고 합니다. 이런 때는 어려운 박사 학위 받고 무엇 하러 이 회사에 들어왔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고급인력을 뽑아 놓고는 이렇게 사람을 부려도 되는 것인지, 이러한 조직문화에 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아니, 이런 상황이 조직문화 탓인지 개인적 감정 탓인지 뚜렷하게 구분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팀장과 마주할 때면 얼굴을 더 찌푸리게 됩니다. 곧 연말평가도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없는데도 이렇게 비굴하게 눈치나 보면서 조직생활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전의 제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ID: 긴 가방 끈)
A 고학력자인 당신으로서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상사에게 중요한 존재로 각인되고 싶은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그런데 상사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셨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일에 대한 회의마저 들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기업문화를 탓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품는다고 해서 당신의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상사가 당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선,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지금의 직장을 선택하던 때에는 분명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고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 조건이 완전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순간 당신이 포기해야 한 것은 무엇이었고, 꼭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이 생각하는 일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 가치가 매몰된다고 느끼시나요?
 
이런 가치의 위기 상황에서는 자신의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조율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업무의 가치를 팀원들에게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조직 관리 관점에서 무엇이 당신의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그저 ‘주변에서 알아서 대해 주겠지’식의 기대는 어린아이 같은 의존이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입니다.
 
둘째, 현실적인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아 인정받고 싶으신가요? 이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바로 현실의 자기 모습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좁혀가면서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하고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현실의 당신이 대인관계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입사 몇 개월 동안은 일보다 ‘상사와 주변 동료들에게 먼저 인사 건네기’ ‘확실한 업무 파트너를 적어도 2명은 만들어 놓기’ 등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주력하십시오.
 
박사’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팀장의 충고는 박사라는 브랜드 위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대신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채우면서 현실적인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가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충고에 여전히 반발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현실에서 드러난 당신의 부족함을 박사라는 브랜드로 단박에 끌어 올릴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요.
 
셋째, 일보다 사람이 먼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사 업무는 학문적 능력으로만 평가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상사와 신뢰관계를 구축할 것인가’입니다. 때로는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인 호소가 당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회사 조직에서 당신의 1차 고객과도 같은 상사와 벽을 느낀다는 것은 업무 과정상의 결핍을 안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관계에서의 심리적 벽을 허물지 않고는 조직은 물론 개인 역시 견고하게 지탱하기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팀원끼리의 인간적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 회사는 부조리극의 공간이 됩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전달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상사와 충분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 만큼의 인간적 신뢰관계를 만들기 바랍니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가는 대화는 공허한 울림이 될 뿐 당신의 진정성은 전달되지 않습니다. 상사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 상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세요. 의외로 딱딱한 상사의 마음이 유연해질 수도 있습니다. 상사가 자기마음을 이해 받았다고 느끼고 부하직원을 믿을 만하다고 확신할 때 비로소 상사의 업무 지시의 의도와 의미도 명확해집니다. 하나의 팀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나에 대한 상대방의 견제의식을 떨치게 하는 지름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불필요한 자학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입니다.
새로운 일을 배워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비교를 통해 자신이 위축되고, 그 감정에 계속 집착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이지요. 오히려 지금의 감정을 긍정적인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다보면 후퇴할 수도 있고, 잠시 멈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상황을 유용한 정보로 여기고 목표를 조정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입사한지 6개월 되었다고 하셨지요? 자신의 상황을 단정하기에 너무 이르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새로 마주하는 상황들이 당신에게 익숙해지도록 시간적 여유를 두었으면 합니다. 마음이 조급할수록 자신에게 불필요한 압박만 더해질 뿐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 당신의 능력이 더 끌어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뛰어나다고 해도, ‘박사’ 학위가 현재 맡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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