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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급진적 조직변화가 성공확률 더 높다

김남국 | 24호 (2009년 1월 Issue 1)
 
최근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마케팅 군살빼기(Slim Marketing, Vo.16)’ ‘위기 시대의 전략기획(Vol.18)’ ‘조달원가 혁신(Vol.19)’ ‘불확실성 시대 및 경기 하강기의 전략(Vol.21,22)’, 불황기 인재관리 방법(Vol.23) 등을 스페셜리포트로 다뤘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세부 분야의 경영 기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가져오는 핵심 동력은 바로 ‘기업 문화’입니다. 훌륭한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면 전략이나 전술상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성공을 일궈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기 극복과 도약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기업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는 기업문화 변화의 ‘호기(好機)’입니다. 2년 안팎의 짧은 기간 안에 급격한 조직문화 변화에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와 이론, 실전형 솔루션을 종합했습니다. 위기를 탄탄한 조직문화 구축의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흔치 않지만 일부 기업은 지속적으로 우월한 성과를 낸다. 많은 경영학 연구자들은 경기변동과 산업구조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의 공통점으로 우수한 ‘조직 문화’를 꼽는다.
 
실제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d To Last)’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들은 모두 성공 기업의 조직 문화를 연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 저자들은 기업문화가 지속 성장의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 문화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기업 문화는 사회적 통념과 조직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다 축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배우기(learning)’도 만만치 않지만 ‘버리기(unlearning)’도 정말 어렵다. 따라서 많은 기업은 조직 문화 변화를 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드물지만 단기간에 급격한 조직 문화 변화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엄격한 위계질서, 부서 간 높은 장벽, 혁신 부재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조직이 불과 2년 안팎의 짧은 기간 안에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KT파워텔이 그 주인공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전통 산업에 속한 대기업이라는 특징, KT파워텔은 첨단 업종에 속한 공기업 문화를 가진 중소기업이라는 특징을 각각 지니고 있다. 사장 및 임직원에 대한 인터뷰 및 광범위한 자료 분석을 토대로 급격한 조직 문화 변화의 성공 동인을 분석했다.
 
Case Study 1
현대오일뱅크: 비효율적인 조직 문화와 위기
현대오일뱅크는 2000년 초까지 기업 문화 측면에서 거의 경쟁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선 상부에 의사결정권이 집중돼 있었다. 최고경영자(CEO)는 무려 1900여 건에 이르는 구매 관련 결재를 모두 처리했다. 사장실 앞에는 결재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전자결재 시스템이 있었지만 간부들은 종이 문서를 고집했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스태프 부서 직원들은 고위 임원들의 ‘컨디션’을 파악해 ‘적기’에 서류를 상신하는 것을 핵심 업무로 여겼다.
 
회의도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지정 좌석에 앉아 ‘지시’와 ‘질책’ 중심으로 진행했됐다. 상급자의 말이 곧 ‘법’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토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직원들의 태만과 부패도 문제였다. 한 직원은 “과거에는 대리만 돼도 결재만 하는 등 위로 올라갈수록 일을 하지 않았다”며 “업무는 별로 없었지만 부장급의 권세는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철저한 연공서열 문화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직원들은 관례대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별반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다. 심지어 외환위기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국내 정유산업의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과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들어도 기름 소비를 줄이기 힘든 데다 원유가가 변하면 판매가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산업 구조의 특성 덕분에 비효율적 구조를 가진 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됐다. 따라서 직원들의 의식 속에는 “정유산업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엉뚱한 시점에 위기가 찾아왔다. 보통 정유 회사는 실제 원유를 인도받기 3개월 전에 계약을 한다. 가격이 결정되는 시기와 제품을 인도하고 돈을 지불하는 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환율이나 유가가 급변하면 손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외환위기 때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낸 경험 탓인지 현대오일뱅크는 따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환율 및 유가 변동성이 훨씬 커지면서 현대오일뱅크는 2000년 1930억 원, 2001년 3910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눈 깜짝할 사이 도산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특급 소방수가 필요했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현대오일뱅크의 대주주이던 아랍에미리트의 주주(IPIC) 측에서는 서영태 사장을 낙점했다. 두산씨그램 부사장과 살로먼스미스바니 대표를 거친 전문경영인인 그는 2001년 12월 현대오일뱅크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부임했다가 2002년 4월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살로먼스미스바니 재직 시절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큰 이익을 낸 공로로 대표이사로 뽑혔다. 잘나가는 ‘뱅커’가 돌연 부도 위기에 몰린 회사로 옮기려 하자 주위에서는 만류했다. “워낙 부실이 심한 데다 나이 50세가 넘어 완전히 새로운 업종으로 바꾸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었다. 주위의 이런 우려는 오히려 반드시 회사를 살리겠다는 그의 ‘오기’를 자극했다.

위기의식 확산과 구조조정
생사의 갈림길에 선 회사에 부임한 서 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금줄 확보를 위해 금융회사나 정부를 찾아갔을 것 같지만 그는 직원부터 찾아갔다. 그는 10여 일 동안 회사의 재무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한 뒤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2002년 1월 서울을 비롯해 대전·대산 등지를 직접 돌며 경영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가 던진 핵심 메시지는 ‘이대로 가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는 신용등급 하락과 채권단 및 시장의 신뢰 상실, 대외 여건 악화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또 생존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 2002년 적자 규모를 500억 원으로 줄이고 판매마진을 리터당 5원 개선하자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직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위기의식 확산은 조직 변화의 출발점이 다. 경영진은 외부 컨설턴트와 내부 직원으로 구성된 ‘구조조정 실무팀’을 가동해 3개월 동안 비수익 자산 매각, 인원 감축, 수익성 향상을 위한 단기 처방을 강력히 실행에 옮겼다. 이 기간에 전 직원의 30%인 약 600명이 회사를 떠났다. 레이싱팀과 건물 등 비수익 또는 비핵심 자산 65건도 처분했다. 이들 자산의 장부가액만 932억 원에 달했다. 물론 비용 동결과 삭감도 이어졌다.
 
초기 3개월간의 구조조정은 위기에 처한 다른 회사들이 취한 것과 유사한 정책이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는 일부 항목에 대해 예외를 뒀다. 직원 교육, 팀워크 향상을 위한 부서 운영비, 마케팅비는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인상했다. 이런 항목들은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비전부터 수립
비용과 인력을 줄이고 자산을 매각하는 단기 처방으로 급한 불을 끈 경영진은 다음 조치를 고민했다. 위기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에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신사업 발굴이나 원가 절감 같은 구체적인 방안이 시급했다. 실제 2002년 당시 경영 목표는 흑자가 아니라 적자 규모를 500억 원대로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비전’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에 집착했다.
 
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향후 3년간의 비전을 담은 ‘비전 2005’를 만드는 작업에 열을 올렸다. 이 비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석유 정제 및 마케팅 회사로서 역동적인 경쟁력을 갖추며, 국내 최고 회사로 도약한다. 우리의 자부심은 고객, 종업원, 주주, 환경,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한다.”
 
당시 현대오일뱅크는 메이저 정유 4사 가운데 꼴찌였으며,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직원의 30%를 해고한 회사가 ‘국내 최고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하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경영진은 비전 확산에 매달렸다. 2002년 7월 대전의 한 호텔에서 임직원과 협력회사, 거래처 관계자들을 모두 불러 대대적인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또 전 임직원이 비전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비전 명칭 공모전을 실시했다. 이는 모두 직원들이 비전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영진은 이 공모전을 통해 비전 명칭을 ‘OPEN2005’로 정했다. 비전을 달성할 전략과 행동 철학을 명시한 비전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작업도 병행했다. 각 본부와 부문, 팀 단위까지 비전을 수립하도록 유도했다. 경영진은 또 구체화한 비전 내용을 책자로 만들어 내부 직원들과 거래처에 배포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권한 위임
서 사장은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원들을 일대 혼란에 빠뜨리는 결정을 내렸다. 전자결재 시스템을 모두 폐지하고 e메일로 결재하도록 한 것이다. 서 사장은 e메일 프로그램인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활용해 각종 보고는 물론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예를 들어 주요 의사결정 사항의 경우 실무 직원이 팀장, 이사, 본부장, 사장에게 한꺼번에 결재를 요청하는 e메일을 보내면 의사 결정권자들은 ‘전체 답장’ 버튼을 눌러 해당 안건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결재를 대신했다.
 
팀장부터 시작해 사장까지 순차적으로 결재를 받는 데 익숙한 직원들은 혼란스러웠으며, 간부들은 처신하기 어려웠다. e메일로 동시에 결재 내용을 발송하기 때문에 상급자가 찬성한다는 입장을 먼저 표명한 경우, 부하 직원인 팀장이 반대 의견을 내놓기 매우 어려웠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서 사장은 e메일 결재를 밀어붙였다. 초기에 혼란이 있었지만 직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한 시스템에 적응해 나갔다. 간부들도 상위 결재권자의 의견 개진 여부와 상관없이 점차 실시간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데 익숙해졌다.
 
서 사장은 e메일 결재 시스템을 정착시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른 비즈니스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유 회사에서는 특히 앞 공정을 신속하게 정리해야 다음 공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정유 업체의 공정은 모두 700개입니다. 그런데 한두 명의 의사 결정권자가 결재를 안 할 경우 뒷 공정 모두가 정지됩니다. 동시 결재가 이뤄지면 의사결정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저는 지금도 하루에 100개 정도의 각종 e메일을 받고 있으며,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이동 중에도 결재를 합니다. 사장실에 줄지어 결재를 기다리고 있던 시절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서 사장은 결재의 형식만 바꾼 게 아니다. 결재권자 자체도 변경했다. 하부로의 권한 위임을 위해서다. 서 사장은 각 팀장에게 적정한 권한 위임 수준이 어느 정도가 바람직한지를 직접 물어 이를 기초로 위임 전결 규정을 조정했다. 이를 통해 사장이 결재해야 한 1900여 건의 구매 관련 결재가 현재는 30건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성과주의 인사제도 도입하면서 협업도 강화
조직 문화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인사 제도다. 현대오일뱅크 경영진도 급한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한 뒤 인사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인사제도 개편은 크게 3방향에서 이뤄졌다. 첫째는 복잡한 직급의 단순화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대우, 차장, 부장대우, 부장, 이사대우, 이사 등으로 매우 복잡한 직급을 사원(staff)과 과장(manager), 차장(Leader1), 부장(Leader2), 상무A, B 등으로 단순화했다.
 
둘째로 360도 다면평가를 도입하면서 조직 평가와 개인 평가를 연계했다. 상사와 동료 부하직원을 모두 평가하는 다면평가를 실시하는 한편 각 부서나 팀에 대해 A, B, C 3등급, 개인에 대해서는 SS, S, A, B, D로 구분해 점수를 매겼다. 조직 평가 성과에 따라 각 개인평가의 배정 비율이 달라졌으며, 인금 인상폭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하위 5%에 대해서는 무조건 D를 주도록 했다. 관리자급에서 D를 받은 경우 퇴출 1순위였다. 실제 D를 받은 간부들은 대다수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나중에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서 하위 5% 퇴출 제도에 대한 반발이 커졌지만 서 사장은 흔들림 없이 이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룹 인센티브 시스템도 도입했다. 과거에는 공장 가동률을 기초로 월 급여 200% 범위에서 성과급을 지급했다. 따라서 회사가 적자를 내더라도 공장만 잘 돌아가면 성과급이 나왔다. 이 문제를 없애기 위해 회사 전체의 재무 성과에 따라 연봉의 50%까지 보너스를 주는 관행도 정착시켰다. 직원들은 당연히 회사의 재무적 성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셋째로 연공서열 인사를 타파했다. 진급 연한이 된 대상자만 골라 승진시키던 과거 관행에서 탈피, 매년 평가 등급에 따라 자격 점수를 합산해 일정 기준을 충족한 경우 승진이 가능하도록 했다. 과거 사원에서 부장에까지 진급하려면 적어도 16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8년만에도 가능해졌다. 현대오일뱅크는 과거에 비해 매우 급진적인 성과주의를 도입했지만 조직의 성과가 개인 평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강력한 액션러닝 실행
기업의 경영 혁신을 위한 수많은 기법과 툴이 개발돼 있다. 현대오일뱅크 경영진은 이 가운데 액션러닝에 ‘올인’했다. 여러 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것보다 회사 상황에 맞는 툴 하나만 선택해 끈질기게 실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란 판단에서다. 경영진은 2002년 9월부터 액션러닝을 시작했다. 액션러닝은 소규모 팀을 구성해 실제 문제를 정해진 시점까지 해결하면서 학습하는 방식이다. 문제를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한 뒤 해결책을 찾아 실행하는 4가지 프로세스를 거치는 과정에서 ‘촉진자(facilitator)’가 토론을 유도하고 질문과 성찰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찾는 학습 방법이다.
 
2002년 9월 오일뱅크 경영진은 사전 준비를 제대로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액션러닝 도입을 밀어붙였다. 액션러닝 도입 전에 팀장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 것이 유일한 사전 준비였지만 경영진은 팀별로 매달 1개 과제를 액션러닝으로 반드시 추진했다. 초기에는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퀵윈(Quick Win)’ 과제를 발굴해 밀어붙였다. 조기에 성과를 내서 ‘성공하는 습관’을 체질화하기 위한 것이다. 과제를 수행할 때에는 다른 부서와 협업을 유도하기 위해 CFT(Cross Functional Team) 구성도 장려했다.
 
경영진은 액션러닝 드라이브를 가속화하기 위해 인사 평가에 액션러닝 실적을 포함했다. 2003년 팀장 목표관리(MBO)의 5%를 액션러닝 실적으로 평가한 데 이어 2004년에는 10%로 반영 비율을 늘렸다. 팀 KPI 평가의 10%도 액션러닝 성과를 반영하도록 했다. 인사에 반영한 뒤부터 액션러닝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줄기차게 액션러닝을 추진하면서 성과도 구체화됐다. 장비 국산화 같은 비교적 단순한 아이디어로 원가를 절감한 것부터 불합리한 유류 관련 세제 개편을 추진해 업계 전체 이익을 높이는 큰 성과까지 속속 등장했다. 특히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개선 과제를 정해 실천하면서 성과를 맛본 것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현대오일뱅크 문성 생산정보기술팀장은 “창의적으로 발의된 혁신 과제들이 1개씩 달성되고 경영 실적이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다른 경영혁신 기법의 도입을 검토했지만 액션러닝 1개만 제대로 잘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초기에 팀 단위로 강제성을 부여해서 액션러닝을 진행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CFT를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촉진자를 적극 육성하면서 성과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식스시그마 같은 다른 경영혁신 기법 도입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데다 통계적 수치를 너무 많이 요구해 전자회사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우리 산업에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액션러닝 하나에만 집중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벽 없는 커뮤니케이션
급격한 조직 문화의 변화에는 서 사장의 리더십도 한 몫을 담당했다. 서 사장은 취임 후 곧바로 현장에 달려간 뒤 아예 경영 설명회를 매년 정례화 했다. 특히 그는 ‘현장 경영 두 배론’을 폈다. CEO가 한 번 방문하면 본부장은 두 번, 그 아래 부문장은 네 번을 방문해야 한다는 게 ‘두 배론’의 핵심이다. 또 한 번 가본 현장은 다시 방문해 변화를 느껴야 하고, 가기 싫은 곳일수록 더 찾아가 직원에게 감동을 줘야 하며, 현장에 대한 선입관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실제 경기지역 자영주유소 사장단 간담회에서 한 주유소 사장이 2년 뒤 개업 10주년을 맞이한다며 서 사장의 방문을 요청했다. 현장 참석자들 모두 사장이 그냥 의례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2년 뒤 그는 잊지 않고 주유소를 찾아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물론 인근 주유소업계에서는 오랫동안 서 사장의 신뢰감있는 행동이 화제였다.
 
서 사장은 한 번 정한 목표에 대해서는 불굴의 추진력을 보였다. 액션러닝을 끈질기게 추진하며 성과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윤리경영도 강력하게 추진했다. 사장 취임 후 비리가 심각하다는 내부와 외부 관계자들의 정보를 듣고 윤리경영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는 회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부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어마어마한 현금 매출을 관리하는 과정 전반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접대비 규정도 엄격히 통제했으며, 내부 고발제도를 운영하는 한편 윤리규정 위반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징계했다. ‘명절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벌이면서 사내 선물 반송센터를 만들어 임직원이 접수한 선물을 정중한 인사와 함께 반송 처리하기까지 했다.

서 사장은 본인은 물론 임직원들의 ‘학습’에 대해서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본인 스스로 2주일에 책 1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를 실천했다. 직원들에게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독서 경영도 강조했다. 현대오일뱅크에 재입사한 한 직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지난 2003년 현대오일뱅크에 재입사했습니다. 재입사 후 교육을 받는데 책을 무려 20권이나 던져주더군요. 이후 현업에 투입됐는데 고과평가기준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요구를 받았습니다. 독후감 제출을 평가에 반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00점 만점에서 10점을 독후감으로 배점했으며, 실제 이대로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매년 40권정도 읽어야 했습니다.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흘러 지금 제 방의 한 벽면은 모두 책으로 가득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읽은 책보다 최근 몇 년간 읽은 책이 5배는 더 많은 듯합니다. 덕분에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으며, 집안 분위기도 변했습니다.”
 
서 사장과 경영진은 직원들에 대한 사소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일례로 현대오일뱅크에서는 한 줄짜리 인사명령서가 없다. 대신 A4 용지 반 장 분량의 편지가 승진한 직원들에게 e메일로 전달된다. 경영진은 신임 인사에 대한 축하와 당부, 이번 인사의 배경과 필요성 등을 편지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 승진자의 가족에게는 CEO가 직접 편지를 보내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결혼기념일이나 자녀 및 배우자의 생일인 경우 ‘Bravo Family Day’란 명칭으로 조기 퇴근을 제도화했다. 임직원 가족사랑 음악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열었다. 이런 노력으로 노사관계도 안정됐다. 실제 현대오일뱅크 노조는 서 사장에게 열심히 뛰어달라는 의미로 구두를 선물했으며, 서 사장도 “구두가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현장을 누비겠다”고 화답했다.
 
성과와 새로운 도전
2002년 본격적인 경영 혁신을 시작하기 전에 현대오일뱅크는 ‘Quinn’의 경쟁가치 모델(competing value framework)을 기반으로 분석을 실시한 결과 다른 문화보다 상대적으로 위계질서가 너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혁신적 문화와 성과 지향적 문화를 강화하는 등 전반적인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혁신 노력을 토대로 변화를 이끌었다. 2004년 Quinn 모델을 통해 조직 문화를 평가한 결과 과거에 비해 혁신적, 성과 지향적 문화가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도 개선됐다. 2002년 기업 문화 혁신을 시작하면서 당해 연도 적자폭 최소화가 목표였지만 첫 해에 50억 원의 흑자를 냈다. 이듬해에도 55억 원, 2004년에는 404억 원의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사상 최대 이익을 실현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현대오일뱅크의 수익성 위주 경영 전략과 리스크 관리 강화, 재무적 성과 창출을 위한 경영 혁신 기법 도입 등이 큰 효과를 본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이후에도 혁신 문화 확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례로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갖춰 프로세스 효율화와 윤리경영 강화, 업무지원 시스템 개선 등의 효과를 봤다. 또 2005년 이후에는 2011년을 목표로 한 ‘비전 2012’를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 ‘비전 2012’는 국내 최고의 효율성을 갖춘 석유 정제 및 마케팅 회사가 되기 위해 2012년까지 고도화 설비를 업그레이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도화 설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익성을 더 높여야 하고 영업력과 핵심 역량, 업무 프로세스도 발전시켜야 한다. 비전 2012를 수립할 때도 현대오일뱅크 경영진은 직원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해 모두가 비전을 공유하도록 했다.
 
서 사장은 단계적으로 조직문화를 바꾸기보다 한꺼번에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문화를 바꾸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2002년 경영 혁신 작업을 시작하고 난 뒤 가장 많이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천천히 가자는 것입니다. 속도를 늦춰야 조직원들이 적응할 시간도 갖고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좋은 말인 것 같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한 컨설팅사의 조사 자료를 보면 경영혁신에 착수한 전 세계 기업 가운데 3분의 1만 성공했다고 합니다. 조직원들은 감내할 수 있는 속도로 변화가 이뤄지길 원하지만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조직 문화의 변화에는 항상 저항이 따르게 마련인데, 속도를 늦추거나 단계적 변화를 추진할 경우 작은 변화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향이 생깁니다. 변화는 단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제가 다양한 변화 관련 이니셔티브를 동시에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Case Study 2
KT파워텔: 중소기업의 조직변화
현대오일뱅크 사례는 단기간에 대기업이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실전형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상황이 다르다. 인원이 적고, 조직 구조가 단순하며, 특히 돈과 자원이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대기업에서 활용한 조직문화 변화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다. KT파워텔 케이스는 이런 점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KT 자회사로 직원 수가 200여 명에 불과한 KT파워텔은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한 비효율적 공기업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1월에 사장이 바뀐 뒤 2년 만에 조직 문화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조직 혁신 방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기 위해 KT파워텔 사례를 분석한다.
 
10년 적자와 무사안일주의
KT파워텔은 1996년 주파수공용통신(TRS)사업권 허가를 받아 설립됐다. 일종의 무전기 서비스인 TRS는 주로 건설이나 물류 회사 등이 신속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통신 수단이다. 그러나 일반 이동전화와 달리 신속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소수 기업만 TRS를 활용했기 때문에 시장 수요가 많지 않다. 또 공기업 특유의 비효율적 관행도 서서히 조직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회사는 설립 후 10년 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적자가 이어졌지만 직원들의 임금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KT그룹 차원에서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개별 자회사의 실적이 좋지 않아도 월급은 꼬박꼬박 잘 나왔다. 또 경영자가 바뀔 때마다 적자 해소를 위해 ‘비상경영’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몇 차례 이를 경험한 직원들은 ‘비상경영’을 매년 찾아오는 ‘단골손님’ 정도로 여겼다.
 
무사안일주의도 팽배했다. 주어진 일에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상당수였다. 시키면 하지만 안 시키면 그냥 넘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도 자리 잡았다. 회의도 비효율적으로 이뤄졌으며, 변화와 혁신을 주창하는 ‘튀는’ 간부나 직원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KT 비즈니스본부장(전무)을 역임하다가 2006년 1월 KT파워텔에 부임한 김우식 사장은 막막했다. 부채가 많고 적자는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매출도 늘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입자를 추가로 확보하면 매출을 늘릴 수 있었지만 망 투자에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TRS라는 틈새시장 특성상 수요도 제한돼 있었다. 김 사장은 고민 끝에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취임 초기에 별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성원 개인들이 해 보자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해 보자고 해서 한 가지씩만 고쳐 나가면 회사 전체적으로는 200가지가 개선됩니다. 결국 직원들의 의지와 노력이 핵심입니다.”
 
김 사장은 직원들로부터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직원들을 만나러 갔다.
 
위기의식 확산과 원가 절감
본사와 영남·호남 등 지역을 돌며 회사의 경영 상황을 숨김없이 전달하는 경영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는 현대오일뱅크 서 사장의 행동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 사장은 이대로 가면 부채가 늘어나 신용 등급이 하락, 금융권 거래가 끊기고 만기 도래한 부채를 연장하지 못해 결국 부도가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흑자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실질적으로 존재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10년간 적자를 내왔고, 10년이 된 시점에서도 이익이 날 가능성이 안 보이는데 투자자들에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솔직한 심경도 토로했다. 앞으로 2년간 흑자를 내지 못하면 김 사장 스스로 간판을 내리겠다는 말도 토해냈다. 적자 회사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은 ‘모럴 해저드’이기 때문이다. 안 되는 사업은 빨리 접는 게 종자돈을 대준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라고 김 사장은 강조했다.
 
직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솔직하고 진심어린 CEO의 말에 공감하는 직원도 많았다. 직원들과 위기의식을 공유한 김 사장은 본격적으로 조직 변화의 고삐를 당겼다.
 
김 사장은 취임 초기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갖도록 직원들을 유도했다. 특히 과거의 관행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 격식을 차리기 위해 하는 행동, 순간적인 상황만 모면하고 보자는 태도 등을 없애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KT파워텔은 과거의 관행에 얽매여 적자가 나는 기지국도 무조건 운영해 왔다. 그러나 TRS 서비스는 이동전화 서비스와 경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동전화의 경우 지하철이나 시골 오지에서도 통화가 가능하지만 TRS는 아직 이런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가입자 시장을 놓고 이동통신과 경쟁을 벌일 처지가 아니었다. 특히 TRS는 기업 고객이 대다수여서 오지에 기지국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소수의 개인 가입자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수요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오지에도 기지국을 세워 유지하고 있었다. 김 사장은 과감하게 개인 가입자 시장 포기를 선언하고 이를 통해 기지국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솔루션 사업 등 본업과 별로 상관이 없지만 막연한 미련 때문에 유지해 온 사업부도 처분했다. 명분뿐인 팀도 정리하고 조직을 단순화했다. 그렇다고 기업 활동 전 분야에서 무작위적인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지출은 늘렸다고 김 사장은 설명한다.
 
기업에서 비용 절감을 시작하면 대개 사무용품이나 업무추진비 등을 줄입니다. 그러나 복사 용지를 10∼20% 줄인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겠습니까. 복사용지 부족으로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밥 먹을 때 컴퓨터 끄고 나가자는 운동도 잘 나가는 회사에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회사에서는 어차피 별 도움도 안 되고 쇼처럼 보일 우려가 높습니다. 어려울 때 직원들 밥값 줄이고 볼펜 안 사주고 하면 직원들이 주눅 들어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저는 이런 부분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팀장이 직원들과 편안하게 회식할 수 있도록 부서 운영비는 늘렸습니다.”
 
업무 관행 및 인사제도 혁신
회의실과 회의 문화도 혁신을 단행했다. 통상 많은 기업이 건물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사장실과 임원실을 배치한다. 그리고 부서별 공간을 배치하고 남는 공간을 회의실로 쓴다. 김 사장은 그러나 외국 기업들의 경우 사무실에서 가장 좋은 곳에 회의실을 배치한다고 강조한다. 회의가 회사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은 회의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회의가 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회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회의 주재 부서가 반드시 회의 자료를 사흘 이전에 배포하도록 했다. 회의에 참여하는 직원들도 반드시 자료를 숙지하도록 했다. 또 회의 자료를 읽어보고 특별한 의견이 없는 사람은 회의를 들어오지 말도록 유도했다. 이와 함께 회의를 주관한 부서는 회의 성격이 특정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것인지, 업무 협의를 위한 것인지, 교육을 위한 것인지 사전에 명확히 규정하도록 했다. 회의에 소요되는 시간도 미리 통보했다. 미리 정한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회의를 끝냈다.
 
근무 복장 자율화도 단행했다. 보통 특정 요일에 넥타이 착용을 금지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가 많지만 이런 경우 넥타이를 맬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KT파워텔은 누구나 원하는 옷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게 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방침이 잘 먹히지 않았다. 상사 눈치를 보며 진짜로 편한 옷을 입어도 되는지 반신반의하는 직원이 많았다. 그러나 김 사장이 1년 동안 수백 번 복장 자율화를 강조하자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고 결국 진정한 자율화가 정착됐다.
 
권한 위임도 적극 추진했다. 부문장과 임원, 팀장들이 각자 책임지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 사장은 특히 실질적인 권한 위임이 이뤄져야 비효율적인 결재 관행 등 관료주의적 장벽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김 사장은 임원과 팀장에게 권한을 위임하면서 인사권도 최대한 관리자들이 행사하도록 했다.
 
한 유명 경영자는 ‘나는 초등생이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전화나 e메일로 보고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대면보고를 줄여라’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기업에서 대면보고는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부하 직원들도 초등학생이 아닙니다. 이들이 비효율적인 대면보고에 집착하는 이유는 ‘눈도장을 자주 찍어야 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면보고를 하지 말라고 아무리 CEO가 강조해도 인사권을 CEO가 쥐고 있으면 부하 직원들은 끊임없이 대면보고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한을 위임해 임원한테만 잘 보이면 신상 문제가 해결되는 시스템을 갖춰 놓으면 결코 CEO에게 대면보고를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사제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성과 보상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승진 인사도 단행했다. 다만 인사제도를 한꺼번에 개혁하기보다 성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용한 실천’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인 만큼 적합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직원들의 역량을 키워가면서 혁신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런 전략을 펴고 있다.
 
회사와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표현했다. 직원과 배우자의 생일 때 꽃을 보내주고, 결혼기념일에는 영화표를 주며, 여름 휴가철 직원들이 연수원에 놀러갈 경우 사장 명의로 과일 바구니와 꽃을 보내주고 있다. 모두 직원과 가족에 대해 진심으로 배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다.

혁신 마인드 제고와 성과
김 사장은 비전이나 캐치프레이즈를 공식적으로 만들어 이를 알리는 선포식 같은 행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전의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회사 규모가 작아 사장의 의지를 직접 직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취임 후 흑자 전환이라는 목표를 직원들에게 제시했으며, 흑자 전환에 성공한 뒤에는 ‘기업 이동통신 시장 1위’라는 비전을 내놓았다. 또 2010년 누적적자 해소 후 상장 등 단계별로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김 사장 취임 후 조직 문화 변혁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KT파워텔의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2006년까지 누적적자가 253억 원에 달했지만 2007년 매출 1069억 원에 당기순이익 26억 원을 낸 데 이어 2008년 매출 1120억 원에 당기순이익 60억여 원을 기대하고 있다. 재무 실적뿐만이 아니다. 원가를 줄이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는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한 직원은 한전과 전력 계약 단위를 변경하고, 절선 설비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서 원가를 크게 절감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서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직문화는 기업의 성공에 절대적 요건입니다. 직원들이 하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만 갖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열정을 갖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기반이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부하 직원들이 상사를 믿고 회사를 믿으면 열정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래서 저는 임원이나 팀장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고, 약속을 했으면 무조건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약속한 것이 지켜진다는 믿음이 생기면 조직은 변합니다. 특히 우리 회사처럼 작은 조직은 떠들썩하게 혁신대회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부들이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습니다. 신뢰 기반 없이 형식적인 혁신대회를 하고 매번 혁신 성과를 평가하다 보면 건수 채우기에 급급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뢰에 기초한 변화가 이뤄지면 단기간에 조직의 성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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