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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Interview: 송재하 ‘우아한형제들’ CTO

“직군별 횡적 조직으로 ‘사일로 문제’ 해결
장애 발생 땐 개인 탓 아닌 시스템 개선 주력”

최호진 | 342호 (2022년 0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개발 문화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어느 정도 갖춰진 규율과 프로세스 안에서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시도하고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서비스 장애가 발생해도 개발자 개인을 징계하지 않고 시스템 문제에 집중해 장애 대응 프로세스를 수립했다. 개인의 성향에 맞게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개발 직군을 기술 관리자 트랙과 기술 전문가 트랙으로 이원화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가속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팬데믹으로 비대면 시대가 열리며 기업의 정보기술(IT)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IT 조직에서는 개발 문화가 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발자들이 서로 가진 지식을 공유하며 개발 효율을 개선할 때 소프트웨어 제품의 품질을 높일 수 있고 이는 곧 비즈니스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발 문화가 비즈니스 성장의 윤활유인 셈이다.

기술 조직의 문화, 즉 개발 문화의 핵심은 협업이다. 건강한 협업 문화를 조성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개발자와 IT 기업뿐만 아니라 비개발 직군, 일반 기업도 개발 문화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좋은 개발 문화는 건강한 협업을 통해 빠른 성장을 원하는 기업과 임직원이 참고할 만한 유용한 지침이다.

배달의민족 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좋은 사례다. 우아한형제들은 사업 초기 마케팅과 브랜딩을 잘하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뛰어난 조직은 아니었다. 2016년 당시만 해도 치킨 할인 이벤트 등으로 평소보다 트래픽이 수십, 수백 배 급증하면 이를 감당하지 못해 서비스가 다운될 정도였다. 지금은 어떨까? 2015년 5월, 약 500만 건이었던 월 주문 수는 2021년 8월, 1억 건을 돌파했다. 개발 직군 비중도 전체 직원의 50%를 넘겼다.1 대규모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유수 기술 조직으로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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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형제들의 기술 역량이 급성장한 핵심 배경에는 개발 문화가 있다. 구성원들이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서로 가진 지식을 공유했다. 서비스에 치명적인 장애가 발생해도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시스템의 문제에 집중했다. 기술 성장의 밑거름이 된 우아한형제들의 개발 문화를 DBR가 송재하 최고기술책임자(CTO)와의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봤다.

‘규율 위의 자율’로 성장 촉진

우아한형제들은 어떤 개발 문화를 추구하나?

‘잡담이 경쟁력’이라는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모토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이 모토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서로 잡담을 잘한다는 얘기는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이라는 뜻이다. 또 자율적인 분위기를 중시한다. 잡담은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잡담이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잡담 안에 우리가 하는 일들이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할 수 있는 얘기들이 풍부해야 한다. 사내에서 내려지는 의사결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으면 할 얘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각자의 의견을 편하게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을 중시하고 있다.

또 개발자들은 주로 코드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존재감을 뿜어낸다. 코드를 비롯한 자기 결과물을 다른 구성원들에게 편하게 보여주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나쁘게 얘기하면 ‘지적’이지만 좋게 얘기하면 ‘조언’이다. 이렇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강조한다. 개발 문화는 구성원 몇 명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업무 전반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주 민감한 사항만 아니라면 회의록 등을 통해 상위 조직에서 내린 의사결정 내용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서비스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실제로 반영할 수 있는 사내 해커톤 등도 개최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잡담이나 의견을 나눌 기회가 줄어들 것 같은데?

우아한형제들은 오프라인에 기반한 기업 문화와 사내 제도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인 2020년 2월부터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적응하는 데 꽤 많은 공이 들었다. 그러나 우아한형제들의 경쟁력은 좋은 제도보다는 변화된 환경에 맞춰 제도를 빠르게 바꾸고 최적의 제도를 찾아 다듬어 나가는 속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근무 당시 갖고 있던 기업 문화의 경쟁력을 온라인 근무에서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시도했고 그리고 빠르게 정착했다.

대표적인 예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일했다. 과거에는 여러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썼다. 오프라인 근무 시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온라인 근무 전환 이후 소통이 더욱 중요해져 슬랙으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일했다. 또 작년에는 메타버스에서 해커톤을 개최했다. 해커톤에서 나온 결과물을 메타버스에 전시하고 심사하는 등 전면 재택근무 환경에 맞춰 사내의 문화적 결속을 다질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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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주 2회 상시 재택근무제를 하겠다고 발표하고 올해부터 주 3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주 2회 상시 재택근무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현재 상황이 업무 환경과 방식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국면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최소한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우아한형제들에도 일종의 도전이다. 근무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닌 항구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기존 오프라인 기반의 조직 문화와 소통 방식 등을 온라인 기반으로 바꾸고 전사 공통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단일화하는 등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 3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취지는 일하기 좋은 환경, 특히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환경을 만들어 더 많은 개발자가 합류하고 현재 구성원들이 장기 근속할 유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한 가족을 중시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조직 문화나 철학이 녹아 있기도 하다. 성장에 대한 회사의 기대도 반영됐다. 여기서 성장이란 단위 시간당 생산성 제고를 뜻한다. 과거 40시간 만에 끝내던 일을 32시간 내에 마치려면 생산성을 25%가량 높여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생산성이 높아지긴 어렵다. 우아한형제들은 이미 2015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바 있고 이를 올해 3시간 더 단축했다. 35시간제에 적응했다고 보고 점진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시도는 우리 사회에 큰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근무 시간과 보수를 늘릴 것인지, 근무 시간을 줄이면서도 보수를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봤을 때 후자가 더 선진적인 방식이다. 심지어 IT 업계는 이미 근무 시간을 단축했지만 보수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단위 시간당 생산성을 끌어올림으로써 삶의 여유를 더 늘리는 방향이 선진화된 사회,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우아한형제들의 행동 원칙에는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어떤 의미인가?

‘개발자들이 개발을 한다’는 의미는 결과물을 만들어 고객을 감동시키고 고객 가치를 창출해 결국 기업 가치를 만든다는 뜻이다. 고객은 개발과 디자인의 결과물을 구분해 그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여러 결과물이 종합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녹아 들어가 그 가치가 증폭되면 고객에게 의미 있게 와 닿게 된다. 그러려면 개발자들이 코드만 맹목적으로 짜서는 안 되고 디자인 등 제품의 여러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고객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춰 자기 몫을 해내야 하는 것이지 자기 일만 해서는 안 된다. 동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이해하고 손발을 맞출 때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개발자도 비즈니스 마인드세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란 단순한 기능이 아닌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품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반복적인 고객 피드백을 거쳐 개선된다. 심지어 우아한형제들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고객이 다양하다.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주문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장님’2 들도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다. 이들도 배달의민족 시스템, 즉 우리가 만든 제품을 이용한다. 또 음식을 실제로 배달하는 수많은 라이더와 이런 다양한 고객에 대한 고객 서비스(CS) 대응을 위해 우아한형제들도 플랫폼 운영자로서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쓴다. 즉 배달의민족 플랫폼의 고객 유형은 크게 4가지이고 우아한형제들을 빼더라도 삼각 축이 움직여야 제대로 가동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의 입장만 집중적으로 반영하면 소비자는 실망하고 떠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사장님도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각 고객 유형의 균형을 맞추면서 제품을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다양한 고객 입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고,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고객의 불편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배달의민족뿐만 아니라 B마트, 만화경 등 여러 가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별로 개발팀도 다를 텐데 일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지는 않나? 우아한형제들이 추구하는 개발 문화를 전사에 확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과거에는 우아한형제들의 사업부서(BM)별로 서로 다른 방식의 개발 문화가 있었고 이에 따른 결과물도 제각각이었다. 지금도 그런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이런 구분을 ‘사일로(silo)’3 라고 부른다. 사업부서, 즉 사일로별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쓰고 있고 개발 방식도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배민1에서 쓰고 있는 기능이 B마트에서도 필요한 기능인데도 각각 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사일로로 인해 생기고 이를 해소하는 것도 현재 당면한 과제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각 사일로에서 공통 요소를 뽑아내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구조도 바꿨다. 모바일 앱, 웹 프런트 혹은 서버 개발 등 직군별로 횡적인 조직을 구성했다. 직군 그룹, 즉 각기 만드는 서비스는 다르지만 직무는 같은 개발자들을 한데 묶어 결과물이나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적 경험들을 나누게 한다. 또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기술 주제에 관해 내•외부 강사를 섭외해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직군 그룹의 리더는 그룹원의 성장을 위해 조언하거나 사내 기술 블로그와 테크 콘퍼런스 발표 자료 작성 등을 돕고 있다. 이런 직군 그룹 내 교류가 사일로 문제를 해소하고 조직 문화나 역량을 공유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이를 위한 예산도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IT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도 우아한형제들은 더 개방적이고 젊은 느낌이다. 우아한형제들이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기업과 비교했을 때 우아한형제들의 현재 상태는 ‘골디락스 존’4 에 비유할 수 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은 규율이 거의 없어 빠른 제품 개발과 반복적인 피드백을 통해 급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도 함께 빠르게 성장한다. 비즈니스를 땅을 파는 것에 비유한다면 스타트업 환경은 엄청 무른 땅이다. 쉽게 땅을 팔 수 있지만 땅이 흔들리기도 하고 무거운 것을 올려놓기에는 불안정한 상태다. 반면 IT 대기업, 즉 그로운업(Grown-up) 기업의 경우 규율이 상대적으로 빡빡하다. 일하는 방식과 소통 방식이 규정돼 있다. 스타트업이 거치는 과정을 아주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하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재량권을 발휘할 기회 역시 줄어든다. 물론 성장 속도가 느리더라도 규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규율이나 틀 안에서 대규모 서비스 운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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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우아한형제들의 장점은 ‘규율 위의 자율’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선 벗어났기에 규율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로운업처럼 빡빡하게 짜여 있지도 않다. 이것이 우아한형제들을 골디락스 존에 비유한 이유다. 수십억 규모의 거래액을 유지하기 위한 규율이나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아직 빈 곳들이 있다. 재량권을 발휘해 이 빈 곳들을 채워나가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우아한형제들의 현재 상태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다룰 수 있는 시니어 엔지니어들이 성장하기 좋은 골디락스 존이라고 생각한다. 우아한형제들이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중시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어느 정도의 규율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것이다. 재량권을 발휘해 개개인이 성장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 제품의 발전과 비즈니스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이 과정에서 업무 프로세스 같은 규율은 하나둘씩 채워질 것이라고 본다.

개인에게 책임 묻지 않고 시스템 문제에 집중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코드를 짠 개발자를 징계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정말인가?

2015년 10월 서비스가 다운돼 장애로 인해 받지 못한 주문에 대한 손해배상 등 3억 원 손실을 남긴 적 있다. 이후에도 2020년 5월, 8월에 이어 12월에 대규모 장애가 있었다. 이 장애들은 내부 실수로 인한 것이었다. 2020년 12월 당시 고객에게 꽤 많은 보상을 했고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2015년 보상액보다 훨씬 큰 금액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발자를 징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장애란 대체로 변화 과정에서 일어난다. 성장을 위해 기능을 추가하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기존의 것을 변경할 때 주로 발생한다. 변경 과정에서 일부가 의도와 달리 구현될 때 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사업 성장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누군가 열심히 노력했는데 장애가 발생했고 이를 문제 삼아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징계했다고 해보자. 해당 구성원은 물론 이를 지켜본 다른 구성원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변화를 회피할 것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우아한형제들은 장애란 누군가가 내는 것이 아닌 특정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이 점을 강조한다. 개인의 실수가 아닌 장애가 일어날 만한 시점에 특정 구성원이 장애를 맞닥뜨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장애가 발생할 만한 내재적인 위험이 있는데 그 위험을 제거하지 못한 전체의 문제 또는 한계인 건지 봤을 때 후자가 맞다. 실수를 징계하거나 질책하는 길로 들어서면 구성원은 무서워서 감히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을 징계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공정하지도 않다. 우아한형제들이 지난 4년 동안 고통과 노력을 통해 체득한 철학이고 업계의 공리이기도 하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과거 히딩크 감독이 한국 국가대표팀을 맡기 전에는 축구를 못하면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정신력을 키운다고 강팀이 되진 않는다. 강팀을 만들려면 약점을 분석하고 체력 보강과 전술 훈련 등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아한형제들은 장애가 발생했을 때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지 않고 의도적으로 프로세스나 시스템의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서비스 장애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을 통한 상황 종결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이후 장애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지난 4년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부서가 함께 장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수립해 왔다. ‘포카요케(poka-yoke)’5 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구체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장애를 빠르게 인지하고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성원들에게 장애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전파해 신속히 조치한다. 조치 이후에는 회고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장애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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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형제들은 자동화된 모니터링 시스템을 슬랙과 연동해 장애 상황이나 전조 증상이 발생하면 빠르게 인지해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조치한다. 또 구성원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장애 상황 발생을 가정한 모의 장애 훈련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모든 조직이 1년에 1번 이상 모의 장애 훈련을 한다. 장애 발생 빈도가 잦아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개선책을 찾고 이와 관련한 장애 대응 훈련도 강화하고 있다.

모든 과제 중단하고 기술 부채 청산

2015년, 2016년만 해도 이벤트를 열면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서버가 죽는 경우가 있었다. 기술적 성장을 위해 기술 부채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했는데 이유가 있나? 과정이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술 부채6 문제 해결은 우아한형제들이 기술 중심 조직으로 성장하는 데 큰 변곡점이 됐다. 그 정도로 중요한 과제였다는 뜻이다. 사실 자기 자본만으로 사업하는 경우가 거의 없듯 개발도 마찬가지다. 제품 개발 초기에는 개발 속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보니 향후 기술적 부담이 될 수 있는 결정이라도 일단 내리고 시도부터 하고 본다. 이때 기술 부채가 발생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개발하면 좋지만 초기에는 성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속도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향후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도 지금 당장은 효과가 크기 때문에 기술 부채를 기꺼이 떠안는 것이다. 지금도 우아한형제들은 기술 부채를 갖고 있다. 우리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자산과 부채는 늘 같이 따라다닌다. 따라서 기술 부채는 ‘있나, 없나’가 아닌 ‘적정 수준인가, 아닌가’로 논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아한형제들은 5년 전쯤 이 기술 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달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CTO로 재직한 시기였다. 기업 부채가 너무 많이 쌓이면 부도가 나고 또 구조 조정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기술 부채가 너무 많이 쌓이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고객은 늘어나는데 시스템이 다운돼 트래픽을 더 이상 소화할 수 없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탈피를 해야 한다. 갑각류가 껍데기를 벗는 탈피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부 갑각류는 오래된 껍질을 벗지 못해 질식해서 죽는다. 조직도 마찬가지로 특정 시점에서 기술 부채를 털어내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이에 우아한형제들은 약 5년 전 김범준 당시 CTO 시절부터 기술 부채를 털어내고 새로운 코드나 구조를 받아들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술 부채를 대거 청산하기 위해 모든 과제를 중단하고 부채 청산에만 매진한 적도 있다. ‘먼데이 프로젝트’7 와 ‘탈루비 프로젝트’8 가 대표적이다. 이때만큼은 사업이 오히려 우선순위 밖이었다. 전사적으로 기술 부채 청산을 최우선의 과제로 두고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불만은 없었나?

기술 부채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아쉬워하거나 섭섭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변화에 대체로 잘 따라와 줬다. ‘스타보다 팀워크’ ‘규율 위의 자율’에 기반한 우아한형제들의 문화가 영향을 준 것 같다.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구성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팔로워십을 발휘해 준다. 이런 부분이 우아한형제들의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기술 부채를 대거 청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코드로 크게 기여한 개발자들이 주목받았다. 당시 큰 활약을 보여준 조직원들이 현재 우아한형제들의 중추적인 리더로 성장했다. 이처럼 기술 부채 청산 과정은 회사 내 역학 구도나 리더십 등이 변화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 내 개발 문화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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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부채를 청산해야 하는 시점은 어떻게 판단하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기술 부채의 규모를 측정하는 방식이 있다. 중복 코드가 얼마나 있는지, 특정한 코드 패턴이 발견됐는지 등을 통해 기술 부채의 규모를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 부채는 대체로 상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다. 하지만 우아한형제들이 몇 년 전 해결 작업에 착수한 기술 부채는 정량적으로 측정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또한 사업 혹은 서비스 품질 성장의 한계가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이렇게 큰 수술은 상시적으로 시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술 부채가 한계에 도달하기 전 적절한 시점에 어느 정도 한 번 크게 청산하는 것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잦은 부채 청산도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 짠 코드들이 바로 최적의 효율을 발휘하지 않고 일정 기간은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정도 부채 수준을 감내하면서도 너무 켜켜이 쌓이지 않도록 상시적으로 털어내는 게 좋다. 우아한형제들은 전사적인 재정비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부채 수준을 관리하고 있다. 전사적인 캠페인이자 행사로 진행 중인 ‘피트 스탑(Pitstop)’ 기간이 대표적이다. 매년 여름 2주간, 하던 업무를 모두 중단하고 기술 부채 일부를 정리하거나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비전과 개발 문화의 성장

이 밖에 개발자들의 성장을 위해 어떤 제도를
운용하고 있나?

개발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주 발견되는 공통적인 성향이 있다. 개발에 몰입해 심리적 쾌감을 얻는 ‘디벨로퍼 하이(Developer High)’ 상태에 대부분이 중독돼 있다는 점이다.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거나 로직이 풀릴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디벨로퍼 하이 상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의 효용에 감동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매진하는 개발자들이 많다. 이런 성향을 가진 개발자들은 경영이나 관리에는 대체로 흥미를 두지 않는다. 미래 커리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머리가 하얗게 샐 때까지 개발 현장에서 계속 일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대로 개발자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이런 맥락에서 우아한형제들은 개발 직군을 기술관리자(TM, Technical Manager) 트랙과 기술 전문가(TE, Technical Expert) 트랙으로 이원화했다. 우아한형제들의 기술 직군은 역량에 따른 7단계 레벨을 갖고 있다. 신입 개발자인 T1에서 시작해 T2∼T5로 올라가면서 기술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워 나간다. T5 단계 이후 TM 트랙과 TE 트랙으로 갈린다. TM 트랙이라면 매니저로서 기술 과제와 구성원들의 역량을 잘 관리해야 하고 TE 트랙이면 실무에서 뛰어난 개발 역량과 기술적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TM과 TE 트랙에서 역량을 입증하면 각각 일반 이사 혹은 기술 이사로 승진하게 된다. 기술 이사는 개발 직군의 정점이라고 보면 된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020년 기술 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기술 이사는 현업에서 개발 업무를 계속하면서 개발자들을 지도하거나 자신의 기술적 영향력을 펼쳐나갈 수 있다. 개발 구성원에 대한 인적 관리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진 기술적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를 도입한 2020년에 기술 이사 6명이 선임됐고 올해 3명이 늘어 총 9명이 활동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당면한 과제와 향후 목표는?

무엇보다 생산성 제고를 매우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개개인의 생산성도 중요하지만 개발 이후 시스템을 배포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단위 시간당 더 적은 힘을 들이도록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밖에도 운영 효율이나 개발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Development) 조직과 운영(Operations) 조직 간의 협업 및 통합을 강조하는 데브옵스(DevOps)9 , 사람이 아닌 자동화를 통해 모든 것을 운영하는 노옵스(NoOps)10 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사일로를 재편해서 내부 시스템에 대한 공통화 작업을 하려 한다. 복잡한 개별 기능들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거나 향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밟아야 할 필수적인 단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플랫폼과 제품을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글로벌화에 힘쓸 예정이다. 모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는 전 세계적으로 배달 서비스 업체를 인수해 나가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가 해외에서도 널리 쓰일 수 있도록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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