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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성의 협상마스터

노사 협상,
기술보다 신뢰가 중요한 이유

김의성 | 327호 (2021년 0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노사 협상은 같은 조직 안에서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협상이기에 더욱 까다롭다. 협상 기술을 활용하기 전에 신뢰를 구축하는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여러 개의 항목을 두고 협상할 때 양측은 ‘바스켓-카타(BASKET-CATA)’ 전략을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 또 여러 개의 항목을 동시에 의논하는 ‘실린더’ 방식을 택해 서로 교섭이 가능한 부분을 조정하고, 상대방의 요구에 반대급부를 제시하는 ‘오버 앤드 언더’ 방식으로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나가자.



편집자주
글로벌 협상 전문 교육업체인 스캇워크 코리아의 김의성 대표가 기업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협상 전략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모두가 윈윈하는 협상의 노하우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최근 노사 협상의 양상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우선 대화의 주체가 달라졌다. 생산직과 영업직이 주를 이루던 임단협의 주체가 연구직과 개발자, 일반 내근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는 최초로 30대를 주축으로 한 사무직 노조가 결성됐다. 노조의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노조 활동이 가두 시위 등 오프라인 현장에서 주로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가입부터 간부 선출, 의사결정에 이르는 활동이 온라인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간부가 아닌 다수 구성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협상의 주제 또한 변하는 중이다. 노사 협상의 대상 1순위는 기본급 인상, 1회성 상여금 지급 같은 ‘보상’인데 최근에는 보상 체계의 공정성과 투명성 같은 이슈로 주제가 확장하는 추세다. 논의 대상이 다양해지면서 협상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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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협상에 신뢰 원칙이 중요한 이유

협상의 출발은 내가 누구와 협상을 하는 것인지 상대방을 정의(define)하는 것이다. 협상의 상대와 어떤 관계인지가 협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의 성격은 크게 장기적, 단기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기적인 관계’의 예로는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살 때 상점 주인과의 협상이라고 보면 된다. 가격이 가장 중요하며, 다시 볼 일 없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반면 노사 관계는 협상의 상대 중 가장 ‘장기적인 관계’에 해당한다. 10년간 함께 일했던 팀장과 팀원이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수 있다. 협상에서 신뢰가 깨지면 조직의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일회성이 아닌 일관된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신뢰가 없는 노사는 협상에서 이른바 하이볼과 로우볼(high ball & low ball)전술1 을 사용한다. 이 전술은 상대방이 어차피 거절할 제안임을 알면서도 더 높고 낮게 시작해야 내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전략이다. 예컨대 회사 측은 4%의 기본급 인상 예산을 책정해 놓고 1%를 제안하고(로우볼), 노조 측은 5% 전후로 타결될 것을 기대하면서도 9%를 부르는(하이볼) 식이다. 이런 전술은 양측 모두 의미 없고 지루한 협상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나마 남지 않은 신뢰마저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노사가 협상에 임할 때 나의 이익을 추구하려면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는 전술이 효과적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노조는 미디어를 동원해서 회사를 비방하고, 회사는 노조 측의 잘못을 뒤지며 상대방을 굴복시키고자 한다. 이런 방식은 협상이 아니라 싸움에 불과하다.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어렵다.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잘못된 행동 하나가 신뢰를 망가뜨리기는 쉽지만 올바른 행동 하나로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노사가 협상 안건을 논의하기 전에 신뢰를 쌓기 위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첫째, 노사가 신뢰 구축의 의지를 표명하자. 그 간 양측이 했던 신뢰를 저해하는 행동들을 나열하고 반복하지 않을 것임을 서로 문서로 약속해야 한다. 둘째, 치열하게 토론하되 합의된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노조위원장이 바뀌고, 사측 교섭위원이 바뀌어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셋째, 노사 양측이 공통의 목표(Shared Objectives)를 설정해야 한다. 노사는 같은 조직 안에 있어서 협상이 까다로운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통의 목표를 찾기는 오히려 쉽다. 공통 목표의 예로는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과를 추구한다’ ‘회사의 평판과 브랜드의 평판은 긍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직원의 자부심이 회사의 성과로 연결돼야 한다’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자랑스러운 회사를 함께 만들어 간다’ ‘회사는 직원을 도구로 보지 않고 함께 성과를 내는 공동체로 인식한다’ 등이 가능하겠다. 공통된 목표를 가졌을 때의 이점은 노사 양측의 잘못된 행동 방식을 제어해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본사 앞 가두시위를 하며 회사를 감정적으로 비방하는 행동은 ‘회사의 평판을 긍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공통 목표에 반한다. 노사가 공통 목표를 찾았다면 이를 문서화해 전 직원에게 알리고, 노사 협상 때마다 반복해서 모든 임직원이 주지하게 한다. 이렇게 협상의 신뢰를 쌓았다면 다음으로 노사 협상에 특히 도움이 되는 협상의 기술을 활용해보자.

첫 번째 기술: MPC

여러 개의 항목을 협상할 때 사용하는 협상 전략, 일명 MPC(Multi Pointed Claim, 복수 항목 협상)2 이다. 이때는 요청을 하는 쪽(Basket - 바스켓)과 받는 쪽(CATA - 카타)의 전략이 서로 다르다. 요청을 하는 쪽은 아래 순서를 따르는 MPC - 바스켓 전략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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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별 항목에 집중해서 항목별로 상대방의 답변을 요구한다. 마치 요구 항목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항목마다 타당한 근거로 무장해서 요구하며 설득하고, 피드백을 요구한다.

2) 답변의 형태는 3가지, ‘그렇다(Yes)’ ‘아니다(No)’ ‘보류(Pending) 혹은 부분 동의’로 나눈다.

3) Yes를 받은 항목들을 모두 바스켓에 넣는다. 잡은 물고기이니 잠시 잊어버리고 다시 남은 항목으로 돌아간다. 더 강한 논거로 다시 설득을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바스켓 전략은 이미 합의가 된 항목은 잡은 물고기인 만큼 내 바스켓에 넣어 놓고 나머지 항목을 추가 협상하는 방식이다. 내가 잡은 물고기가 많아질수록 협상에 유리해진다. 반대로 요구를 받는 측에서는 MPC - 카타(CATA, Can’t hAve Them All) 전략이 유용하다.

1) 상대방이 요구하는 개별 항목을 모두 경청한다. 단, 요구 사항을 모두 말할 때까지 피드백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말자.

2) ‘이번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의 우선순위 한두 개가 무엇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의 이유를 묻는다.

3) 상대방의 우선순위를 알았다면 일은 쉬워진다. 나의 우선순위와 이유를 알려준 뒤 다음 협상까지 요구 사항(Wish List)과 양보 사항(Concession List)을 포함한 ‘숙고한 역제안(Considered Counter Proposal)’을 준비한다.

위의 반응에 요구하는 측에서는 모든 항목이 중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이럴 땐 지혜로운 대화로 우선순위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여러분이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도 우선순위를 알려주겠다’ 같은 식의 대화가 도움이 될 것이다. 카타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항목의 요구에 대해 절대로 그렇다(Yes), 아니다(No) 등의 확답과 시그널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MPC 바스켓-카타 전략의 핵심은 요구하는 쪽(BASKET)과 요구를 듣는 쪽(CATA)의 전략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술: 실린더 전략

두 번째 전략은 ‘깔때기(Funnel)’가 아닌 ‘실린더(Cylinder)’ 기술이다.3 깔때기 협상은 합의가 이뤄진 항목을 빼 나가면서 결국 가장 중요한 항목만 남기는 방식이다. 마지막에 단 하나의 항목(Variable)을 놓고 협상하면 결국 흥정(Haggle)밖에 할 것이 없다. 이런 흥정은 서로 양보해가며 중간에서 만나기 때문에 양측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 또 흥정 이후에는 다시 하이볼/로우볼 전술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 모두 더 높게 시작해야 그나마 건질 것이 많다고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모 자동차기업의 노사 협상 사례를 보면 사측은 기본급, 성과급, 복지포인트 등의 항목에서 합의를 이루는 한편 정년 연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회사가 깔때기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진 변수를 제외해 갔다면 사측에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했던 정년 연장 항목이 마지막에 남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변수만 남으면 충돌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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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실린더 협상은 여러 가지 항목(Variables)을 ‘확답 없이’ 끝까지 몰고 가는 방식이다. 여러 가지 항목이 테이블이 있을 때 교섭 가능한 바게닝 영역(Bargaining Arena)4 이 적거나 없는 항목을 바게닝 영역이 더 큰 항목으로 채우는 ‘리패키지(Repackage)’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노사가 (A) 건강검진 예산 증액, (B) 일회성 상여금 지급, (C) 기본급 인상안을 두고 협상을 할 때, (B)항목의 바게닝 영역에 여유가 있다면 (C)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울 수 있다. (그림 2) 이렇게 전체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내가 가진 항목(Variables) 안에서 리패키지(Repackage)하는 방법은 흥정 없이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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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기술: 오버 앤드 언더

마지막으로 노사 협상에 유용한 기술은 오버 앤드 언더(Over and Under)이다. 상대방의 요구가 과도할 때 쓰는 전략으로 상대방이 요구한 만큼 반대급부를 요구해서 비용 중립(Money neutral)이 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만약 노조 측에서 임금 인상과 보너스, 명절 상품권, 건강검진 예산 증액, 영업 차량 업그레이드 등의 사항을 동시에 요구했을 때 사측에서 이를 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럴 때 비용이 올라가는 오버(Over) 항목에 대해 비용이 감소하는 언더(Under) 항목을 요구하며, 중립선(Neutral line)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노조 측의 요구에 대해 사측에서 영업 차량을 3년에서 4년으로 늘릴 수 있는지, 출장 시 사용하는 호텔 등급을 낮출 수 있는지, 피복지원비를 줄이거나, 회식비를 줄일 수 있는지 등의 언더 항목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용 중립적(Money neutral)이라고 했지만 일정 예산을 책정한 뒤에 그 예산이 초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기술로 사용할 수도 있다. 오버 앤드 언더 기술은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상대방에게 나의 한계를 알려주면서 생각해보도록 만들고, 나 또한 상대방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해를 다투는 항목별로 왜 그게 중요한지, 각각의 이유를 대며 논쟁해봐야 협상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직 의미 있는 제안(Proposal)만이 협상을 진전시킨다.

노사는 가장 까다로운 협상의 상대다. 하지만 원칙을 세우고 신뢰를 쌓는 동시에 협상의 구조와 기술을 익히면 의미 없는 감정과 에너지를 소진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건설적인 협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명심하자. 협상은 “갈등 상황에서 덜 중요한 항목을 더 중요한 항목과 교환하며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5 이다.


김의성 스캇워크 코리아 대표 info.kr@scotwork.com
김의성 스캇워크 코리아 대표는 BAT, 네슬레, 펩시 등 글로벌 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했으며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BAT 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스코틀랜드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최고의 글로벌 협상 전문 교육 업체인 스캇워크 코리아(www.scotwork.kr) 대표를 맡고 있다.
  • 김의성 | 스캇워크 코리아 대표

    필자는 BAT코리아 대표이사와 베링거 인겔하임, 사노피에서 사업부대표를 역임했다. 이전에는 네슬레와 펩시 등의 글로벌 기업에서 영업총괄(Head of Sales), 지역 영업팀장(Area Manager), 신유통 영업팀장(Key Account Manager), 중국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총괄 등을 맡아 다양한 커머셜 직무에서 수많은 협상을 경험했다. 현재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협상 전문 교육 기업인 스캇워크 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info.kr@sco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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