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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Interview : 박종진 SBS I&M 플랫폼서비스실장

데이터센터를 클라우드에 복제하면 끝?
넷플릭스는 준비하는 데 7년 걸렸다

김윤진 | 280호 (2019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미디어 산업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클라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사용자가 황금 시간대에 동시 접속해도 끊김 없는 고화질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07년부터 장장 7년여의 노력 끝에 클라우드로 전환했다. 넷플릭스가 꼬박 7년이 걸려서야 클라우드 전환에 성공한 까닭은 클라우드를 혁신의 동력으로 삼으려면 단순 데이터의 이동을 넘어 모든 운영과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지상파 방송사인 SBS가 국내 방송 사업자 중 처음으로 2016년 클라우드 이전에 착수했다. 소수정예를 중심으로 운영과 개발을 통합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브옵스(DevOps)’ 조직을 만들고, 직군별 칸막이를 없애고, 3개월 단위로 자리 배치를 바꾸는 등 클라우드 이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애자일 조직으로 변신 중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오주현(숙명여대 글로벌협력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올해 6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은 네이버의 라이브 플랫폼인 ‘V LIVE’를 통해 전 세계에 독점 생중계됐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유료 결제한 팬 14만 명이 동시에 접속했지만 실황 중계는 버퍼링 없이 고화질로 매끄럽게 진행됐다. 네이버 측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전용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고, 트래픽 집중을 예측해 서버를 평소의 4배 이상 증설한 것을 안정적인 서비스의 비결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기업들이 클라우드의 중요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움직이고 있지만 해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진작 끊김 없고 안정적인 대용량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클라우드 도입에 사활을 걸어 왔다.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2008년 8월부터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옮기기 시작해 장장 7년여에 걸쳐 대대적인 공사를 벌였다. 그리고 2016년 1월, 마침내 공사를 끝마치고 자사 데이터센터의 문을 닫았다. 이 기간 넷플릭스 시청량이 1000배가량 폭증했지만 클라우드는 수천 개의 가상 서버와 저장 용량을 단 몇 분 만에 추가하면서 데이터 사용량 증가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그 결과 이제 넷플릭스는 130개 이상 국가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글로벌 인터넷 TV 네트워크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전 세계 사용자들이 동시 접속을 하는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를 방영한다든지, 국제적인 이목이 쏠리는 대형 콘서트나 스포츠 이벤트 등이 열릴 때면 방송 콘텐츠 플랫폼의 기술력은 시험대에 오른다. 갑자기 트래픽이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고 접속이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의 서버를 제때 설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까딱하다가는 수십만∼수백만 팬들의 원성을 사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대용량 서비스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는지가 업계 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를 둘러싼 자존심 싸움도 치열하다.

지난해 FIFA 월드컵 국내 생중계 서비스에 있어 자존심 경쟁의 승자는 단연 SBS였다. 한국과 독일 대표팀이 맞붙던 2018년 6월27일, 전국민 관심을 반영하듯 KBS, MBC, 아프리카TV, 푹(POOQ)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 페이지가 일제히 다운됐지만 SBS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 덕분에 SBS 앱은 독일전에서 창사 최대 온에어 동시 접속자 22만8000명, 최대 트래픽 303Gbps을 수용하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날 모바일 방송 서비스 가운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SBS의 디지털 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SBS I&M(인터넷&모바일)의 박종진 플랫폼서비스실장은 그 배경으로 ‘클라우드’를 지목했다. SBS가 2016년 5월 국내 방송 콘텐츠 서비스 사업자 가운데 가장 먼저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AWS의 인프라를 탄력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 SBS는 그동안 지상파 연합 플랫폼인 POOQ과 지상파와 종편, tvN 등의 인기 방송 콘텐츠를 네이버TV와 카카오TV에 독점 공급하는 SMR(스마트미디어랩) 등 합작 법인의 출범을 주도하며 국내 동영상 콘텐츠 디지털화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SBS의 클라우드 기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박 실장을 만나 지난 3년여간 클라우드가 조직을 어떻게 탈바꿈시켰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6년 국내 방송사 최초로 클라우드 전환을 했는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SBS가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게 1990년 말이다. 회사 인프라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말 그대로 ‘레거시(legacy)’가 된 시스템에서 10∼20년 된 장비들을 가지고 동영상 서비스를 해왔다. 너무 오랫동안 이사를 안 하면 집 구석구석에 어떤 짐이 박혀 있는지도 잘 모르고 필요할 때 찾기도 힘들지 않나. IT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인프라가 오래되다 보니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힘들뿐더러 1년에 한두 번 대형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SBS 웹이나 앱에 떼로 밀려드는 시청자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10시 황금 시간대에 시청률 20∼30%대 인기 드라마가 나오기라도 하면 11시 무렵 본방이 끝나자마자 VOD 다시 보기를 이용하겠다고 달려드는 접속자 때문에 페이지 장애가 생기기 일쑤였다. 특히 영상이 안 뜨거나 버퍼링이 심할 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뜰 때까지 클릭을 무한 반복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과부하되곤 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또 어떤가. 몇십만 인구가 동시 접속해 있다가 경기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또 다른 10만여 명이 하이라이트 영상을 돌려보겠다고 사이트를 찾는다. 경기 때문에 결방하는 인기 예능이나 드라마라도 있으면 “스포츠 싫다” “예정대로 방영해 달라”는 항의하려 시청자 게시판에 로그인한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이처럼 특정 기간에 정점으로 치솟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했고, 1년에 서너 번은 사이트가 못 버티고 먹통이 됐다. SBS만의 문제도 아니었고, 이런 상황이 20년 가까이 반복됐기에 모두 사고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OTT(Over The Top) 1 서비스가 트렌드가 되고 유료 이용자가 예상보다 많아지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외부의 초고성능 시스템을 빌릴 수 있는 클라우드를 찾게 됐다.


클라우드 전환 이후 대규모 접속이나 대용량 비디오 처리가 수월해졌나.
원래는 장비를 사서 자체 데이터센터에 넣어놓고 썼다면 이제는 클라우드에 있는 시스템을 ‘월세’ 내고 쓴다. 구독 모델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말 그대로 서버가 사라지는, ‘서버리스(Serverless)’ 환경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AWS가 그때그때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만큼 자동으로 서버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한 번도 새로 서버를 산 적이 없다. 이런 신축적인 환경의 이점은 리우올림픽, 평창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러시아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가 열릴 때 빛을 발했다. 가령, 과거에는 서버가 50Gbps 정도의 트래픽을 수용할 수 있는데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그 3배 용량인 150Gps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미리 몇십 대의 서버를 임대하거나 추가로 돈을 내고 구매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시청자가 그 정도로 몰릴 것이냐, 트래픽이 과연 3배까지 늘어날 것이냐를 입증해야만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흥행 여부는 누구도 장담하기가 어렵지 않나. 불안하니까 머뭇대고 결정을 미루다가 실제 그 정도 예상 트래픽이 발생하면 시스템이 결국 죽었다. 이게 일상이었다. 지금도 클라우드 전환을 안 한 회사들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 아마존의 인프라 한계까지는 무한히 서버를 늘릴 수 있다. 클라우드 전환으로 서비스 품질이 개선되고 고객 만족도도 높아졌지만 사실 직원 만족이 더 크다. 원래는 서버가 다운돼서 페이지가 안 뜨면 직원들이 밤늦게 회사로 뛰어나가서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야 했다. POOQ 서비스를 운영할 때는 혹시나 문제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2년간 매주 주말에 출근한 적도 있다. 안정적 서비스와 편리한 UI/UX를 기대하는 고객과 경영진에게 장비 탓, 환경 탓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사용자가 외면하면 결국 시스템이 아닌 우리 책임이다. 클라우드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였다.


기존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노후화한 것을 모두가 당연시해 왔는데, 변화를 결심한 계기는.
방송 서비스를 개선하려면 지난 20년간 썼던 장비들부터 우선 버려야 했는데 이를 위해 새 장비를 구매하는 것도 전부 돈이었다. ‘디지털은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만연한데 누가 이익도 못 내는 적자 사업에 선뜻 비용을 지급하겠나. 새로운 서버 2∼3개만 사려 해도 1000만∼2000만 원은 들고,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600개가 넘는 장비를 교체하는 작업은 10억 원이 넘게 드는 대공사였다. 결재받기부터 쉽지 않았다. 2014년 외부 컨설팅을 의뢰했던 IBM도 장비 노후화를 SBS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지만 새 장비를 살 수가 없으니 꾸역꾸역 성능도 낮고 전기도 많이 먹는 기존 시스템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SBS를 떠나 2012∼2016년 지상파와 종편 등의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POOQ과 SMR에서 일했다. SMR에선 네이버TV 등에 지상파부터 종편, tvN 등 케이블 채널에 이르는 하이라이트 클립 영상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송출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 그런데 여기는 신생 회사다 보니 레거시 시스템이 없었고, 새로운 시스템을 힘들여 구축하는 대신 처음부터 클라우드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AWS, KT 클라우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이 바탕이 돼 2016년 SBS에 돌아온 뒤 ‘새 장비가 필요 없는 클라우드로 가자’며 클라우드 이전을 추진하게 됐다. 서비스 개선은 해야겠고, 이게 장비 교체보다는 그나마 돈이 적게 드는 방법이라 판단하고 시작했다. 그리고는 개발자들이 마음껏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1년간 1억 원 한도의 신용카드를 만들어줬다.



새 서버가 필요 없는 ‘서버리스(serverless)’ 환경이 가지는 이점은.
한 예로, 이전에는 옛날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 종영된 작품 홈페이지를 다 열어놓기가 어려웠다. 사이트 개편 한 번 할 때마다 예전 프로그램 다시보기 영상 등은 최신 1년 치만 남기고 다 닫아버렸다. 과거 프로그램 데이터에 새로운 데이터가 더해져 트래픽 용량이 늘어나면 서버를 추가로 구매해야 하니 항상 비용 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라우드 전환을 하면서 이미 종영된 작품 홈페이지들을 다 복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과거 영상 아카이브를 무료로 풀었더니 시청자 트래픽도 늘고 자연히 광고 매출도 증가했다. 이른바 ‘롱테일 현상(long tail theory)’ 2 이 나타난 셈이다. 2016년 클라우드 전환 이후 시스템 비용은 그대로인데 사이트 매출은 2배 증가했다.

또 2016년부터 새로운 서버를 구입하지 않다 보니까 현금흐름이 매우 좋아졌다. 신규 장비 구매비가 2015년 11억6000만 원이었는데 2018년에는 1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원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용료로 매년 약 5억 원가량을 썼는데 클라우드 이전이 완전히 끝나면 이 사용료는 100% 없어지게 된다. 클라우드는 유지보수 비용도 필요 없다. 신규 장비 구매와 데이터센터 운영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투자 위험 없이 대규모 서비스 구성과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IT 인프라 감가상각 비용도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다. 차근차근 클라우드 이용 범위를 넓힌 결과 지난해 SBS의 TV 프로그램과 스포츠 빅 이벤트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모두 옮겼고, 올해 초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끝마쳤다. 연말이면 골프나 증권 등 케이블 채널의 클라우드 이전도 완료할 것 같다.


갑작스러운 업무 방식 변화에 따른 진통은 없었나.
어려우니까 4년째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넷플릭스의 경우 클라우드 이전에 꼬박 7년이 걸렸다. 클라우드로 전환한다는 게 단순히 AWS가 제공하는 서버나 스토리지 등 물리적인 인프라만 활용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실상 모든 기술을 재구축하고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고된 작업이다. 기존 시스템에 적응해 있던 사람들의 업무 방식과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원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그대로 옮기는 것은 기존 데이터센터가 지닌 한계점과 문제까지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좋은 인프라가 있어도 그 이점인 ‘확장성’과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AWS는 우리에게 서비스를 빠른 속도로 혁신하기 위해 개발과 기획, 운영을 통합하는 ‘데브옵스(DevOps)’ 3 조직을 제안했고, 한꺼번에 다 바꿀 순 없으니 진취적인 ‘관종(관심종자)’ 몇 명과 함께 우리 상황에 맞는 새로운 조직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SBS콘텐츠허브만 해도 직원이 120∼130명은 됐기 때문에 그동안의 업무 방식을 다 뜯어고치자고 하면 실패 확률도 높고 내부 반발도 심할 것 같았다. 직원들도 낯설고 손에 잘 안 익는 업무를 굳이 시도하려 하진 않았다. 이에 따라 조직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먼저 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들을 선별했다. 자원자가 3명이면 일단 3명의 데브옵스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적응하면 새로운 데브옵스 조직을 만들어 새끼를 치는 방식으로 참여 인원을 늘려나갔다. 일종의 ‘다단계’ 내부 학습 틀을 만든 셈이다.


조직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나.
이전까지는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을 발견하는 기획자 따로, 실제 그 불편을 해소하는 개발자 따로,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운영자가 따로 있었다. 부서가 다르면 소통을 문서로 하니까 프로세스가 느려졌고, 성과평가지표(KPI)가 달라 업무 우선순위도 제각각이었다. 연말 인사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그러다 보니 고객 요구나 콘텐츠 환경 변화에 맞춰 부서를 초월해 협업하고, 서비스를 빨리빨리 업그레이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포털이 정해준 고객 여정에 따라 콘텐츠가 소비되는 한국 상황에서 포털로 가는 트래픽을 일부라도 흡수하고, 우리 스스로 고객 여정을 만들어내려면 사이트가 편리해져야만 했다. 네이버 메인화면에 방송사와 메이저 신문사 콘텐츠가 다 있는데 왜 굳이 불편한 각각의 방송사, 신문사 사이트를 찾겠나. 불편을 파악하는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 사이의 소통이 안 되고 장애가 일어나면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바쁜 기존 칸막이 구조로는 서비스 개선이 요원했다.

직원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자리 배치부터 바꿨다. 기획팀, 개발팀, 운영팀끼리 나뉘어 있으면 같이 뭉치질 못하고 동상이몽이니까 직군별 구분 없이 데브옵스팀을 만들어 모두 한 공간에 모아두기로 한 것이다. 프로젝트마다 개발자, 운영자, 기획자를 각 1∼2명씩 붙이고 3개월마다 헤쳐 모이는 식으로 운영했다. 이렇게 3개월마다 자리 이동을 하다 보니 직원들도 짐 싸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다 적응하더라. 프로젝트 단위로 사고하고 짐 싸는 데 익숙해진 게 가장 큰 변화다.



클라우드 전환 이후 서비스 개선 속도가 빨라졌나.
그렇다. 단순해 보이는 홈페이지 개편 작업만 해도 사실 여러 선수의 협업을 요구한다. 방송이 끝나면 VOD 파일을 올리거나 짤막한 하이라이트 클립과 섬네일 이미지 등을 만들어 입력하는 운영자가 있어야 하고, 홈페이지의 전체 구조인 템플릿을 짜는 기획자, DB에서 데이터를 추출해서 뿌려주는 개발자, 페이지를 사용자 눈에 보이게 구현하는 코더까지 누구 하나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예전에는 기획자가 사이트를 편성한 뒤 개발자에게 맡기는 식으로 절차가 나뉘어 있었다면 이제는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무엇보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micro service architecture)’를 구현한 게 속도를 높인 비결인 것 같다. 마이크로 서비스란 매번 애플리케이션 전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역별, 기능별로 최대한 쪼개놓고 개발하는 방식을 말한다. 모든 서비스를 레고블록처럼 조각조각 낸 뒤 비행기가 필요하면 비행기를 조립하고, 자동차가 필요하면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쪼개놓으면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 크기도 작아지고, 의사결정이나 서비스 업데이트도 수월해진다. 이런 마이크로서비스의 성패는 결국 개발자들이 얼마나 많은 레고블록, 즉 API 4 들을 만들어놓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우리는 10대, 20대, 30대 등 연령대별 콘텐츠 추천 API, 남녀 성별에 따른 콘텐츠 추천 API, 드라마·예능 등 프로그램 유형별 콘텐츠 추천 API, 이런 식으로 블록을 아주 많이 만들어 놓았다. 코더들은 이 블록을 조립만 하면 되니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개인 맞춤형 추천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이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4년간 클라우드 이전 과정에서 느낀 점은?
SBS는 클라우드 전환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할 수 있었다. 통신비는 20∼30% 절감됐고, 시스템 인프라 비용도 40∼60% 줄었으며, 신규 서비스나 디지털 기술에 투자하던 비용도 20% 정도 아꼈다. 개발 결과물을 공동 사용하면서 SBS, SBS미디어넷, 골프닷컴, 스포츠 빅 이벤트 사이트 등이 함께 성장하는 등 규모의 경제도 누렸다.

그러나 이 과정이 절대 녹록지 않았고, 도중에 떠나간 인력들도 있었다. 사실 클라우드 전환 자체는 돈만 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 더 큰 땅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남이 이사를 대행해주면 옮겨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집의 구조와 땅 주위의 환경을 익히지 않으면 막상 이사해도 자기 집에서 헤매고, 제대로 농사짓는 경작법도 모른 채 그 가치를 누리지 못한다. 가령, AWS에도 펀딩 프로그램이 있어서 얼마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면 기존 데이터센터에 있던 데이터들을 그대로 클라우드에 옮겨주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송사도 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장비와 데이터를 정리하고 버릴 건 버려가면서 해야 한다. 무조건 클라우드에 복제만 해놓는다고 갑자기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게 되고, 서비스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절약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나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문과생도 클라우드 엔지니어 될 수 있나요?”

처음 ‘클라우드’ 스페셜 리포트를 준비하게 됐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미래 먹거리라니, 이 기회에 내 먹거리부터 염탐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문·이과 사이에 담을 쳐 온, 그간 공교육의 폐해로 첨단 기술에 지레 겁부터 먹는 문외한들을 대표해 지식의 격차를 좁혀보겠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클라우드 관리서비스업체(MSP)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필요한 클라우드 전문 인력은 약 30만 명, 공급은 2000여 명에 불과하다.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나날이 치솟고 있으니 몸값을 높일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표에게 “문과생은 클라우드 엔지니어가 될 수 없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리를 못 깨우쳐도 기술은 익히면 되니 별문제 없단다. 희망이 생겼다. IT 인프라가 클라우드화되는 과정에서 기존 시스템 엔지니어와 개발자들도 새로 배워야 하긴 마찬가지란다. 굴지의 대기업마저 공용 클라우드로 눈길을 돌리면서 대기업 시스템 통합(SI) 엔지니어들도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다.

용기를 얻어 클라우드 엔지니어 입문 단계를 찾아봤다. 당연히 데이터를 다루고 가공해야 하니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선 같은 최소한의 컴퓨터 언어는 익혀야 한다. 여기에 시장의 52%를 독식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주관 클라우드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면 금상첨화다. 국내에서는 클라우드 인재 사관학교를 표방하는 베스핀글로벌아카데미에 들어가 역량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클라우드에 대해 취재하면 할수록 클라우드 시대의 경쟁력이 결코 ‘기술’에 있지 않다는 게 또렷해졌다. 기술은 학원에서 배우면 되고 자격증은 따면 되지만 그것만으로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 국내 방송 사업자 중 최초로 클라우드를 도입한 SBS의 박종진 SBS I&M 플랫폼사업실장은 시종일관 기술이 아닌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클라우드 이전의 성패는 ‘데브옵스(DevOps)’ 조직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빠르게 변하는 클라우드 환경에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발자(Developer)든, 시스템 안정을 추구하는 엔지니어(Operator)든 직군의 경계를 초월해 협업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게 그의 핵심 메시지다. 기술 자체보다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내 영역이 아닌 업무도 기꺼이 끌어안고 시도해보는 태도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개발과 운영 업무로 동시에 뛰어든 SBS의 데브옵스 인재들은 한때 ‘관종(관심종자)’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훨씬 높은 몸값에 다른 기업들로 스카우트됐다.

최근 5G 전쟁이 치열한 통신업계의 SK텔레콤은 아예 개발 조직과 별개의 인사(HR) 조직인 역량문화그룹을 두고 전사적인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도 결국엔 협업과 공유, 즉 일하는 문화의 혁신이다. 클라우드는 부서 간, 직군 간 칸막이를 없애고 고객 및 계열사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매개일 뿐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결국, 클라우드가 기업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직군을 파괴한 ‘융합형 인재’들의 등장이다. 피자 두 판만 시키면 되는 5명 안팎의 작은 데브옵스 조직으로도 파괴적 혁신이 가능해진 이유다. 한 우물을 진득하게 못 파고, 곁눈질해도 괜찮은 시대가 왔다. 이번 클라우드를 공부하면서 배운 것은 프로그래밍 언어도, 물리적인 네트워크 장비를 다루는 법도, 통신기술도 아니다. 클라우드는 이미 기술이 아닌 문화이고, 문화를 익히는 데 있어 문·이과의 구분은 없다는 것이다. 클라우드형 인재로의 변신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그건 심리적 장벽뿐이다. 마음을 열어보자. 구름에 올라탈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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