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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현대카드 라이브러리’ 마케팅 케이스 스터디

신용카드 회사가 문 연 '라이브러리', 브랜드 스페이스를 기업의 헤리티지로

현대카드 브랜드 본부,여준상,김현진 | 232호 (2017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현대카드는 아날로그 부재 시대에 역설적으로 현대카드의 브랜드 DNA를 오프라인의 핵심인 ‘공간’에서 구현했다. 고객들이 책을 통해 현대카드의 철학과 정체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라이브러리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 운영에 대해 고민하는 기업들에 현대카드 사례는 지속성, 일관성, 적합성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경험을 제공하면 몰입이 일어나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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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2007∼)’와 ‘컬처프로젝트(2011∼)’ 등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독특한 이벤트를 기획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 지난 10여 년간 총 40여 회에 걸쳐 세계적 아티스트들과 함께 콘서트를 여는 과정에서 ‘다르게, 새롭게 보고 업(業)의 영역을 넓혀 현대카드만의 방식을 만들어낸다’는 이 회사 브랜드 전략의 원칙이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평가다.

현대카드는 문화 이벤트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브랜드 가치를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문화 이벤트가 고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지만 일회성 행사라는 특징 때문에 지속성 측면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카드는 아날로그 부재의 시대에, 역으로 현대카드의 브랜드 DNA를 오프라인의 핵심인 ‘공간’에서 선보이겠다는 발상을 했다. 바로 현대카드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라이브러리는 종이책이 주인인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공간이다.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 그리고 그 안을 채울 책 등 도서관의 모든 구성 요소에 현대카드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이식하면 오프라인에서 지속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마케팅 사례는 공간 혁신을 추진하는 많은 기업들에 큰 교훈을 준다.

 

세상에 없던 도서관을 기획하다

현대카드는 지금까지 총 4개의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2013년 서울 가회동에 문을 연 첫 번째 라이브러리의 주제는 디자인이었다. 현대카드는 디자인이야말로 정체성의 바탕이자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영역인 만큼 향후에도 이 분야에서 리더십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봤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은 현대카드의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였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세상에 없던 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도서관에 대해 알아야 했다. 이를 위해 아마존에서 50여 권이 넘는 도서관 관련 책을 구매했고,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일본 등의 수십여 개 도서관을 직접 방문했다. 발견한 적 없는 신대륙을 지도도 없이 찾아 나서는 심정으로 뛰어든 첫 디자인 라이브러리 작업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팀 내 미팅을 제외하고 경영진과 가진 정례 회의만 50여 회에 달했고, 새벽 3∼4시 퇴근은 예사였다.

다행스럽게 문을 연 그 주말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예상보다 4배나 많은 고객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첫 프로젝트였던 디자인 라이브러리 가(假)오픈 날에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담당 직원들에게 “이 정도면 바로 다음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데 착수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운영되는 걸 보고 1년 뒤에나 다시 추진할지를 결정하려 했던 당초의 계획은 수정됐고, 담당자들은 바로 다음 라이브러리 설립에 착수했다.

디자인의 뒤를 잇는 라이브러리의 주제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음악, 영화, 여행, 광고, 리빙, 요리 등 30여 가지에 달하는 주제가 선택지에 올랐다. 라이브러리의 주제가 트래블, 뮤직, 쿠킹 순으로 결정된 것은 소비자들의 취향과 관심, 트렌드 등을 분석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고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 주제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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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간에 대한 재해석: 영감의 공간

라이브러리 기획 담당자들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 대전제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서관의 기능은 검색이다. 독자가 원하는 특정 정보나 책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공간이다. 현대카드는 이 개념을 뒤집기로 했다. 독자가 책을 찾아보는 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이 독자에게 책을 제안하는 도서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도서관에 있는 어떤 책을 뽑아 보더라도 독자가 영감(inspiration)을 받을 수 있도록 최고의 책을 선정해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아무 책이나 읽으셔도 좋아요. 당신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자신감을 가진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별 주제에 따라 최고의 책을 선정하는 이른바 ‘큐레이션(curation)’에 심혈을 기울였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신간 위주로 채워지는 일반적인 도서관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정 부회장은 “한 권을 꽂더라도 의미 있는 책, 꽂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책을 선보이자. 책장을 다 채우지 않아도 좋다. 양보다는 질(質)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마다 ‘프린시플(principle)’이라 불리는 일련의 ‘원칙’을 세웠다. 최근 문을 연 쿠킹의 경우는 이렇다. ‘일상에 영감을 주고(inspiring), 실용적이며(practical), 믿을 만한(reliable) 책이어야 한다. 또, 오감을 자극하는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있어야 하며(flavorful), 요리의 최신 흐름을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Timeless yet Timely) 한다.’

큐레이션에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았다. 현대카드는 이들에게 ‘북 큐레이터’라는 신종(新種) 직업명을 부여했다. 각 세부 분야별 북 큐레이터들은 현대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자료나 책을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카드 내부에서도 현대카드의 정체성과 철학을 담은 책들을 따로 선별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경우 전 세계 2000여 
개에 달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출판사의 도서 목록을 분석했다. 이렇게 전문가와 현대카드가 각각 절반씩 책을 선정하면 이를 현대카드가 다시 한번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도서관에 꽂을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 중 10%에 대해서는 현대카드가 왜 이 책을 선정했는지에 대한 코멘터리(commentary)를 붙여뒀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 작업을 진행한 지난 7년여 동안 미국,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일본, 태국 등 전 세계 36개국을 방문해 23만 점이 넘는 도서를 검토했다. 중고 책이나 절판본 전문 취급 업체들도 만나 희귀본 등을 구매했다. 뉴욕, 독일, 영국 등 직접 해외 국가를 방문해 책을 구입하는 일도 예사였다. 그 결과, 전 세계 2만5000여 곳의 출판사와 음반사를 돌면서 5만8400여 점의 책과 음반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장서(藏書) 수와 음반 수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 카테고리에 대한 재해석: 세상을 읽고 다시 나누다

책을 분류하는 방법과 과정도 새롭게 수립했다. 현대카드만의 시각으로 학계와 소비자들의 관심을 분석해 카테고리를 재해석한 것이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경우 국내외의 디자인 교육 기관, 뮤지엄과 협회 등 관련 기관의 현존하는 모든 분류표를 조사해 14개의 카테고리와 44개의 하위 카테고리를 확정했다. 미시적인 분야로 분류되는 ‘오가닉(organic·유기적) 디자인’이나 국내 도서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평(criticism)’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아트’ 등을 14개 주요 카테고리에 포함했는데 이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만의 차별점이다.

트렌드를 분석해 카테고리를 유연하게 수정하기도 한다. 얼마 전 카테고리를 개편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디자인’을 포함한 것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산업 디자인에서 사용자와 제품 간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책이 속해 있는 분야와 꽂혀 있는 위치 등을 나타내는 ‘청구 기호’도 현대카드만의 방식으로 새로 개발했다. 현대카드는 직관적 이해가 가능한 최소한의 식별 단위로 된 기호체계를 자체 개발했다. 모든 종류의 도서를 한데 모아놓는 일반적인 도서관들은 ‘십진분류법’을 이용해 청구기호를 나타내는데, 이 방법이 너무 복잡해 고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책 옆면에 붙이는 청구 기호가 적힌 표(label)의 크기도 라이브러리마다 달리했다.

예컨대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책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 경우가 많으므로 책을 최대한 덜 가리게 하기 위해 청구 기호표를 작게 만들었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그 반대였다. 여행 도서는 쉽게 손때가 묻고 낡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이 기호표 역시 크게 만들었다.

청구 기호표에 분야별로 다른 색을 넣어둔 것도 현대카드의 아이디어였다. 그저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표의 색만으로도 꽂힌 책의 카테고리를 알아볼 수 있게 하고, 멀리서 서가를 바라봤을 때 해당 색이 붙어 있는 책이 많다면 그 분야가 각 주제에서 가지는 중요성이 크다는 걸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를 진열하는 과정에서도 현대카드가 중시하는 ‘기능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점을 투영한 것이다.

음반이 대부분인 뮤직 라이브러리의 경우 장르의 시대적 흐름을 강조하기 위해 청구 기호표 색(色)을 마치 오디오를 조절하는 이퀄라이저(equalizer)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했다. 음반이 꽂혀 있는 전경으로도 대중음악의 진화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3. ‘읽기’의 재해석: 체험형 라이브러리로의 진화

도서관을 읽고 보는 공간으로 한정 짓지 않겠다는 것 역시 현대카드가 라이브러리를 추진하는 방향성이었다. 처음에 만들어진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는 덜 강조됐던 체험형 공간이 트래블, 뮤직, 쿠킹으로 진화할수록 확장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트래블 라이브러리에서는 체험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현대카드가 추천하는 여행 경로를 ‘구글 어스(Google Earth)’가 제공하는 3D영상으로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플레이 룸’을 설치했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진열해놓은 바이닐(LP)을 가져다가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아홉 개의 플레이어를 설치했다. 또 디제잉을 해 볼 수 있는 코너도 만들어뒀다.

최근에 문을 연 쿠킹 라이브러리는 레서피를 탐구하는 것은 물론, 요리를 배우고, 만들고, 맛보는 등 요리에 관한 모든 과정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무이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요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관심을 가질 법한 흥미로운 음식 서적들로 공간을 채우고, 이 관심이 체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3층과 4층에 부엌을 배치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쿠킹 클래스를 여는 것은 물론, 라이브러리에 구비해 둔 책 속에 등장하는 레서피 속 식재료를 준비해두고 방문객이 스스로 요리해 볼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셀프 쿠킹’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특히 2층에는 150여 가지 종류의 향신료들과 요리의 기본 재료인 기름과 소금 등 각 20여 종이 갖춰져 있는 ‘인그리디언츠 하우스(Ingredients House)’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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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관(官) 4색(色):
디테일에서 드러나는 라이브러리별 특징

현대카드가 라이브러리 공간을 만들면서 고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어디에 지을 것인가’였다. 어떤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오가는 지역인가에 대한 고찰 없이는 장소를 선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만들 지역으로 서울 종로구 가회동을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북촌과 인접해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한옥이 많고 기와와 나무 콘크리트를 조화롭게 사용해 지어진 건물이 많아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라는 키워드를 담아내기 적합했다. 뮤직 라이브러리가 이태원에 자리 잡은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서 이태원이 가지는 의미를 재해석한 결과였다.

라이브러리 내부의 작은 디테일에도 각각의 라이브러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정신이 잘 드러난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서가는 책을 쌓아놓은 모습을 형상화해 중첩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또 몰입의 공간이라는 라이브러리의 콘셉트를 잘 드러내기 위해 건물이 정원을 둘러싼 중정(中庭)의 구조를 갖춘 건물을 선택했다. 중앙으로 몰리는 빛이 건물 각각에 잘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해 채광이 뛰어나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책의 빛바램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빛의 양과 빛이 드는 각도를 측정해 서가의 위치를 조정한 것은 물론 블라인드 높낮이까지 섬세하게 설정했다. 책과 책 사이를 구분하는 칸막이도 안쪽 깊숙이 넣어 진열된 책에 몰입하는 데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트래블 라이브러리 입구에는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비행 안내판’을 설치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설렘을 라이브러리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한 것. 또 방문객이 오롯이 여행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실내를 ‘호기심의 동굴’이라는 콘셉트로 설계했다. 벽과 천장은 동굴의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했고 창문도 만들지 않았다. 모든 제작물은 바다와 산이 연상되도록 디자인했다.

뮤직 라이브러리는 건물을 완전히 새로 지었다. 무형의 음악이 채워지고 울려 퍼지는 느낌을 나타내기 위해 공간에 여백을 많이 두고, 입구 바닥은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사를 뒀다. 건물 입구의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벽화나 포스터를 재활용해 만든 아트 워크, 지하 공연장 전면에 새겨진 스크래치 그래피티 등에는 뉴욕 브루클린의 자유로운 정신을 담아냈다. 화려한 바이닐의 외관을 부각시키기 위해 건물 전체의 톤은 블랙 등 어두운 색채로 통일했다. 음반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고 음악의 산업화가 태동하던 시대의 느낌을 주기 위해 철제 소재 위주로 내부를 꾸며 공장(industrial)을 연상케 하는 거친 느낌을 강조했다. 또한 입구의 작은 휴지통마저도 직접 디자인해 뮤직 라이브러리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쿠킹 라이브러리는 음식이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채광에 신경을 썼다. 흰색 타일과 원목을 주로 사용해 따뜻한 느낌도 줬다. 1∼4층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는 구조로 설계한 것도 특이점이다. 1층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며 후각을 자극하고, 서가가 놓여 있는 2층과 3층으로 올라가 책을 보며 요리의 세계에 대해 탐구하다, 3층과 4층의 부엌에서 눈으로 읽은 내용을 직접 체험해보고, 또 먹어도 보는 유기적인 경험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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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모나리자’를 언급한 이유

정 부회장은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기획하던 당시 담당자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Musée de Louvre)에 왜 가는 것 같나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Mona Lisa)’를 관람하기 위해서겠죠. 우리 라이브러리에도 바로 이 모나리자 같은 아이템이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담당자들은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의 ‘모나리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보적인 자료, 이른바 ‘희귀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현재 각각의 라이브러리는 매달 주제를 정해 수집한 희귀 아이템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전 세계에 한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희귀 자료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어마어마하게 비싼 책이라고 해서 막상 살펴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자료는 아닌 사례도 있었다. 여기서 현대카드는 ‘컴플리트(complete) 컬렉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랜 기간 역사성을 가지고 발간돼 온 간행물 전권(全權)을 모으면 희귀 아이템 이상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현재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1928년 창간한 세계적 권위의 건축·디자인 매거진 <도무스(DOMUS)>, 포토 저널리즘의 정수라 불리는 , 지구의 일기장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대중문화 및 음악의 정신으로 불리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 요리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파운데이션 북 어워즈(The James Beard Foundation Book Awards)> 등의 전권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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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탐구해 영감을 전하는 라이브러리

‘지난 5년간 라이브러리가 쌓아온 기록은 기대 이상이다. 현재까지 라이브러리 방문객은 51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문을 연 쿠킹 라이브러리의 흥행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가 만든 4개의 라이브러리는 광고를 최소화해 운영했다. 지면(紙面)은 초기에 한두 번 이용했고, TV광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현대카드 블로그나 카드 이용 고객 대상 DM(Direct Mail)을 통해 소개하는 정도였다. 라이브러리는 주로 방문한 고객들의 입을 통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알려졌다. 건축 설계부터 큐레이션, 체험에 이르는 전(全) 단계에서 현대카드의 정체성을 담은 ‘세상에 없는 라이브러리를 만들겠다’는 차별화 전략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도서관의 본질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해 선정한 주제를, 현대카드의 철학과 시선으로 탐구해 세운 공간이다. 라이브러리에서 고객이 할 수 있는 체험은 책을 읽고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음식을 만들고, 또 맛보는 아날로그적 경험의 확장을 통해 고객은 일상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영감을 얻는다.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은 종착지가 없는 여행과 같다. 브랜딩은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라는 말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본질에 대한 통찰력 있는 탐구를 바탕으로 천천히 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가 추진해온 모든 프로젝트와 함께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현대카드만의 비(非)대칭 전력이 됐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그간 업계를 선도하는 차별적 마케팅으로 유명한 현대카드가 공간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브랜드 마케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온라인, 모바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판매 채널이 재편되는 상황인 데다 오프라인 공간의 유용성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현대카드는 미래 오프라인 마케팅의 방향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오프라인은 무조건 의미가 없다’가 아니라 오프라인의 역할, 즉 가치창출이 일어나는 지점을 새롭게 정의하고 포지셔닝해 간다는 측면에서 많은 기업들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현대카드의 브랜드 스페이스 마케팅에 담긴 시사점을 살펴보자.

 

공간이 마케팅에서 가지는 의미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공간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간이라는 것은 마케팅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심리학에서의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몸, 그리고 그 몸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공간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에 따라 몸의 움직임과 감각이 영향을 받고 그 움직임과 감각은 사고나 감정, 더 나아가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최근 공간설계를 통해 몸의 운동감각을 자연스레 컨트롤해 소비자 태도나 행동을 긍정적으로 유발하는 쪽으로 마케팅이 진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마케팅 공간은 파는 장소’라는 일차원적 개념에 머물러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특히 오프라인 공간은 제공자가 펼친 장소에 소비자가 찾아와 돈을 주고 재화나 서비스를 사 가는 곳으로 거래, 교환적 의미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온라인 세상에서 클릭 한두 번으로 구매가 해결되기에 오프라인 공간의 유효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마케팅=판매’라는 일차원적 등식에 머물면 오프라인 공간은 더욱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판매는 공급자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마케팅을 바라봐야 한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케어(care)’라는 개념을 포착할 수 있다. 현대카드 사례는 이런 점에서 향후 기업들의 소비자 접점 공간 관리와 관련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제 공간은 더 이상 판매채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기업이 만나 소통하고, 소비자가 ‘케어’받는 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브랜드의 방향과 철학을 경험하고 케어를 받으면서 소비자 스스로 브랜드에 열렬한 팬이 되게 하는 채널이다.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을 지갑 가진 사람이라 보고 지갑을 열게 하겠다는 것은 과거 발상이다.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팬이 되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지갑은 저절로 열린다. 그래서 오프라인을 인위적, 인공적으로 설득을 강요하는 공간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고객들이 자유를 느끼고 그들의 일상 속에서 결핍을 채우며 그 과정 속에서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동화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왜 라이브러리인가

도서관은 아날로그의 전형 중 하나이다. 디지털 홍수 속에서 매일 스마트폰과 PC에 노출돼 있는 현대인에게 책, 그리고 그 책이 소장된 도서관은 디지털 세상에 대한 일탈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디지털에 노예가 된 현대인들에게 도서관은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힐링, 휴식의 공간, 자신을 성찰하는 공간이 된다.

온라인 채널이 대세가 되면서 최근 많은 기업들이 오프라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에 현대카드 사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게 한다. ‘소비자가 스스로에게 ‘탈디지털’ 라이선스를 줄 수 있는 역발상적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디지털 홍수 속에서 허덕이는 소비자에게 또 다른 디지털 체험을 강요하기보다는 잠시라도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여유로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장소가 어디 도서관뿐이겠는가? 도서관처럼 디지털 디톡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제2, 제3의 공간을 찾아 고객의 편에서 진정 그들을 케어해주는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브랜드 스페이스 매니지먼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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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통한 지속가능한 커뮤니케이션 창출

많은 마케팅 이벤트는 일회성에 그친다. 특히 요즘처럼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치고 빠지는 단발성 마케팅 프로모션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단발적 프로모션은 브랜드 지속성(brand sustainability) 관점에선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복적 행사로 고객들이 프로모션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되면 고객의 기대가 더 커져 기업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기대가 커진 만큼 실망도 커져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고객들의 ‘브랜드 이탈’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브랜드 팬덤을 만들고 경쟁자의 가격, 프로모션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브랜드 프리미엄 효과를 누리겠다면 지속가능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 접촉이 가능한 구조물, 즉 빌딩을 ‘터치포인트’로 가져갔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현대카드가 오래 지속할수록 라이브러리는 하나의 헤리티지(heritage, 유유히 이어지는 문화적 유산) 역할을 할 것이다.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헤리티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에도 헤리티지 관리가 필요하다. 100년, 200년 넘게 이어지는 구조물, 상징물이 시대를 뛰어넘어 고객들에게 경외와 감동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최근 들어 비슷비슷한 브랜드 홍수 속에서 진정한 브랜드를 찾고자 하는 의미에서 브랜드 진정성(brand authenticity)이 강조되고 있다.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지속성, 일관성이 확보돼야 한다. 브랜드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툴이 필요하다.

 

핏에 의한 무의식적 수월성, 몰입 경험

A와 B가 서로 맞아떨어지면 기대 이상의 효과가 발생한다. 눈으로 보이는 물리적 맞춤이라는 기대 효과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무의식적 몰입, 삼매경효과 때문에 기대 이상의 임팩트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핏(fit) 효과는 ‘내게 딱 맞다’는 표면적 인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르는 편안함, 용이함’이라는 수월성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낸다. 또 더 나아가 몰입, 삼매경,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적극적 참여)라는 무의식적 행동마저 이끌어낸다. 그야말로 마케팅의 최종 종착지(destination)라 할 만하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마다 핏(fit)이 일어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공간 마케팅의 정교화’라는 시사점을 던진다. 각 주제와 공간구조 간에 핏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그 주제에 빠져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디자인, 여행, 음악, 요리 콘텐츠에 빠져들게 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콘텐츠가 제공되는 공간 및 주제와의 핏이 일어나야 한다. 공간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공간, 즉 사람을 둘러싼 맥락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산 또는 소비행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몰입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서 ‘체화된 마음’ 이론에서 얘기했듯 공간의 설계는 행위의 몰입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사후적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쳐 재방문, 재구매, 충성적 팬덤 행위를 결정지을 수 있다.

앞으로 기업이 오프라인 공간을 신설하거나 리노베이션할 때는 이런 ‘핏 효과’를 기반으로 그 브랜드만의 독특한 기운을 창출하면서 브랜드 헤리티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서두르면 안 되고 무조건 제3자에게 맡기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아무리 훌륭한 디자이너, 건축가가 참여했더라도 주인의 철학, 콘셉트, 가치관이 반영되지 않으면 겉만 화려할 뿐 오래가지 못한다. 브랜드 스페이스의 성공은 결국 브랜드 오너의 혼이 땀과 노력을 통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담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돈만 많이 들여 장황하고 화려하게 조성하는 ‘물량투입형 공간디자인’은 지양해야 하며, 같은 돈을 들이더라도, 또는 돈을 적게 들이고서도 ‘핏’을 통해 얼마든지 수월성 체험, 몰입 실현, 가치 지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요컨대 앞으로의 기업 오프라인 공간 마케팅은 돈을 얼마나 투입할지 등 물량 개념으로 성공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간이 지향하는 개념, 즉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체험의 목적과 그 공간 디자인 사이에 핏(fit)이 일어나도록 질적 차원에서 혁신 여부를 판가름해야 할 것이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단순히 책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건물 디자인부터 시작해 책 구성, 고객 참여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통해 고객들에게 총합적 경험을 전달하는 브랜드 마케팅을 시현했다. 앞으로 기업들은 고객들과 단순한 거래 관계가 아닌 삶의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맺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철학이 필요하다. 브랜드 스페이스는 이런 철학을 실현시키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일관되게 지속해 브랜드 스페이스를 ‘해리티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현대카드 브랜드본부 hyundaicard.com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marnia@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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