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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이코노미와 공유경제

1인 가구가 방아쇠 당긴 ‘공유경제’ 양극화와 취약계층 보듬는 건 숙제

김수경 | 229호 (2017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인 가구의 증가는 하나의 메가트렌드다. 그리고 원인도 단순하지 않다. 20∼30대가 결혼을 망설이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자발적 싱글의 삶을 추구하는 40대 이상도 많다. 최근 1인 가구는 대부분 자발적 1인 가구다. 과거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더 연결돼 있는 현대인들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느끼는 대신 스스로에게 더 관심을 갖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자발적 홀로서기’를 추구한다. ‘혼자’라는 단어가 개인의 행복과 삶의 미학을 추구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발적 홀로서기를 선택한 이들은 공유경제 모델을 발전시켜가며 스스로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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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통계청은 2030년에 1인 가구가 23.7%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언론들은 가족의 해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웬걸, 1인 가구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이미 24%를 넘었고 2015년에는 27%로 증가했다. 1인 가구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됐다. (그림 1) 1990년도만 해도 1인 가구의 비율은 9%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4인 가구(30%)가 가장 흔했고 5인 이상 가구(29%)의 비율도 매우 높았다. 2015년 현재 4인 가구는 19%, 5인 이상 가구는 6%에 불과하다.

1인 가구의 증가를 이끈 ‘주범’으로는 흔히 두 집단이 언급된다. 혼자 사는 청년 세대와 결혼을 미루는 여성들이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사치라는 청년들은 마치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소비하며 동면에 들어간 산짐승 같다. 한동안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5포세대(+집, 경력 포기), 심지어 7포세대(+희망, 인간관계 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동면에서 깨어나 왕성한 생산활동(혹은 생식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온 사회적 관심이 쏟아진다.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리자고도 하고, 스무 살이 되는 해에 1000만 원씩 주자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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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다소 가혹하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결혼을 미루고 ‘자기 인생’을 살겠다는 여성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행간에 보인다. 오죽하면 ‘고스펙’ 여성의 결혼 기피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이들이 ‘저스펙’ 남성과 결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황당한 제언이 나올 정도다. 그런 논리라면 ‘저스펙’ 남성에게 ‘고스펙’ 여성을 유혹하는 법을 가르치는 편이 차라리 빠를 것이다.



1인 가구 증가는 ‘문제’가 아닌 ‘현상’

1인 가구의 증가는 흔히 사회적 ‘문제’로 논의된다. 앞서 ‘주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1인 가구를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암시한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해결’을 요한다. 이런 인식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결혼을 해야 하는데 (그리고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오늘날 1인 가구의 증가는 ‘인간은 누구나 결혼을 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흔들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 즉, 독신 가구는 윤리적 시선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결혼은 한마디로 돈이 든다. 한 결혼 컨설팅 업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6년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 비용은 약 2억7400만 원이다. 초혼 연령의 증가(2016년 기준 남자 32.8세, 여자 30.1세)가 혼인율 감소의 원인이라지만 서른도 되기 전에 무슨 수로 저 돈을 마련한단 말인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197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결혼하는 데 드는 것이 어디 돈뿐인가. 양가에 사위 노릇, 며느리 노릇도 해야 하고 (물론 그 ‘노릇’에도 돈이 필요하다) 모처럼 긴 명절 연휴에 훌쩍 어디로 떠날 수도 없다. 집안의 온갖 대소사에 불려 다니다 보면 주말도 없다. 아이가 생기면 여기에 육아와 교육의 책임까지 져야 한다. 이쯤 되면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석가모니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1인 가구의 증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프레임은 20∼30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인 가구의 증가를 주도한 것이 사실상 40∼50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인 가구의 연령을 비교해보면 20∼30대의 비율은 2005년 41%이던 것이 2015년에는 35%로 줄어든 반면 40∼50대의 비율은 27%에서 33%로 증가했다. (그림 2) 특히 50대의 경우 2005년에 11.5%이던 것이 2015년 16.9%로 증가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결국 혼자 사는 중년들이 1인 가구의 증가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할 나이의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독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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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은 1인 가구의 연령별 혼인상태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림 3) 2015년을 기준으로 할 때 20∼30대의 경우 ‘미혼(93%)’이, 60대 이상의 경우 ‘사별(73%)’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40∼50대의 경우 ‘미혼’이 38%, ‘이혼’이 31%, ‘배우자 있음(별거, 주말부부, 기러기 아빠 등)’이 21%를 차지했다. 즉 40∼50대의 52%p는 이혼을 했거나 배우자가 있음에도 혼자 사는 가족 유형을 유지하고 있다. 별거나 주말부부, 기러기 아빠가 반드시 가족의 붕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통적 의미의 가족 형태에서 멀어진 것만은 사실이며, 종국에는 이혼으로 진행될 소지도 없지 않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결혼이라는 것은 시작도 어렵거니와 유지도 힘들다는 것이 1인 가구 증가에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200∼300년에 불과하다. 가족학의 권위자인 스테파니 쿤츠는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이란 여러 가문이나 공동체들이 협동관계를 맺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으로 임금노동이 가능해지면서 가족에 대한 개인의 경제적 의존도가 낮아지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번지면서 개인의 취향, 즉 사랑에 의한 결혼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문제는 사랑이 변화에 매우 취약한 감정이라는 점이다. 결혼생활에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사랑의 감정이 사라진 결혼을 유지할 의미는 더욱 약화된다. 어쩌면 오늘날의 결혼이란 애당초 모래 위에 지은 성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결혼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압박과 이혼에 대한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엄두가 나지 않는 결혼도 일단은 하고 보는 거고, 결혼생활이 불행해도 어쨌든 참고 사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취약성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시작 또는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시간, 노력이 투입되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혜택은 심리적 안정감, 가족 간 유대감 등 경제적 가치로 환산이 불가능한 비경제적 영역의 것이다. 게다가 가정불화가 빈번한 시대에 그러한 정서적 혜택마저도 불확실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단독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지면 가족이 기댈 곳이 돼주지만 이마저도 각종 보험이나 금융상품의 발달로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해졌다. 결혼의 대차대조표상 비용은 명확해지고 혜택은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결혼의 로망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외로움 대신 자발적 고독을 선택하는 싱글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인 가구의 증가는 단순히 젊은 층들이 결혼을 포기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만은 아니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수명 증가로 60대 이상의 고령 독신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 결혼 대신 독신을 고집하는 40대 이상 싱글족 역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졸혼’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신조어인 졸혼은 법적으로 혼인 관계는 유지하지만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졸업하고 각자의 인생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들 중 상당수는 실제 주거지를 독립해 1인 가구를 선택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왜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들이 함께 살기를 거부하고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가족을 이루며 함께 살기를 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혼자가 되는, 이른바 ‘자발적 홀로서기’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짝’이 주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라는 가치에 더 집중하겠다는 것이 자발적 싱글을 추구하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외로움이 두려워 자신을 포기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독을 택한다. 외로움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면 고독은 혼자일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자발적인 홀로서기는 고립과는 다르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친구들, 가족과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홀로 산다’는 것이 곧 ‘고립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홀로 있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홀로서기’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 솔로 이코노미 세대에게 ‘혼자’라는 것은 ‘고립, 청승’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스스로 선택해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혼술’을 즐기는 것은 청승이 아니라 ‘낭만을 아는 것’이고, 함께할 사람이 없어 대충 끼니를 때운다고 인식되던 ‘혼밥’은 이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과 여유를 상징하게 됐다. ‘혼자’라는 단어가 개인의 행복과 삶의 미학을 추구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솔로 이코노미, 공유경제의 확대 불러

과거 독신은 외로움과 통했다. 독신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들은 섬처럼 외로워질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했다. 그러나 자발적 독신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생각도 변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를 ‘가족’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라고 해석하는 이도 적지 않지만 관계 맺기의 동기와 방식이 예전과 달라질 뿐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안전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셰어하우스’도 그중 하나다.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셰어하우스’는 말 그대로 여러 개인이 하나의 집에 모여 사는 것이다. 침실과 같은 개인공간은 따로 사용하고 거실과 화장실, 욕실 등은 공유한다. 비용은 원룸에 들어가는 월세와 큰 차이는 없지만 보증금이 100만 원 안팎에 불과하고 넓은 거실과 주방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 측면에서 원룸이나 고시원에 비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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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모르는 사람과 같은 집에 살다니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위험하지 않느냐는 우려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20∼30대는 원룸, 기숙사,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으로 공동생활의 경험이 많다 보니 함께 살아가는 법에 익숙하다. 또한 셰어하우스는 계약사항도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며 입주 시 심사를 거치기도 한다. 지인이나 이성친구의 숙박 금지, 애완동물 반입이나 금연/흡연에 대한 규칙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등 어떤 측면에서는 가족보다 합리적이다. 누구 한 사람이 권위로 밀어붙이거나 무턱대고 우겨서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셰어하우스가 단지 주거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모여 있는 공간은 아니다. 이곳의 구성원은 나름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서로에게 대안적 가족이 돼 준다. 셰어하우스 운영업체들은 거주자들끼리의 정기적인 모임을 주선하고 연말파티를 열어주는 등 친교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은 외로운 도시 생활에 서로에게 위로가 돼주며 어느 정도의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받는다. 특히 안전 문제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불안한 여성들의 경우 원룸이나 고시원보다는 셰어하우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셰어하우스는 이른바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공유경제란 물건, 공간, 정보 등 자원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시민의 편의를 증진함은 물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활동이다. 2008년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임대’와 ‘공유경제’의 차이점이 불분명했다. 두 개념 모두 특정 재화를 한정된 시간 동안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유경제’는 ‘공유’와 ‘협동’ 같은 ‘가치’에 좀 더 초점을 둔다. ‘공유경제’가 원래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잘 사용되지 않거나 쉽게 낭비되던 기존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과잉생산에 따른 환경 훼손을 줄이는 것 또한 공유경제의 중요한 측면이다.

공유경제는 ‘규모의 경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1인 가구에게 대안적 소비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이론적으로 1인 가구는 2인 이상의 가구에 비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어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 4인 가족이 사용할 자동차를 2000만 원에 구입한다고 할 때 독신 가구가 쓸 자동차를 500만 원에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인 가구들은 공유경제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주지 못하는 혜택을 꾀한다. 이들은 자동차를 굳이 구매하지 않고도 ‘카셰어링(car sharing)’이나 ‘라이드 셰어링(ride sharing)’을 통해 원하는 곳으로 편안하게 이동한다. 이 두 서비스는 각각 렌터카, 택시와 유사하지만 비용도 저렴하고 이용이 훨씬 간편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자원 효율적, 환경친화적이다.

물론 이러한 공유경제가 1인 가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공유’라는 개념이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공유란 인간의 가장 보편적 경제 행위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흔한 형태의 분배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유경제의 부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함의를 생각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과거에는 가족끼리만 하던 공유를 이제는 낯선 사람과 하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공유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가능한 일이었다. “마누라와 차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빌려주지 마라”는 농담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심지어 믿는 사람끼리도 재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경제 모델이 가능해진 까닭은 공유경제의 서비스 대부분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웹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의 신원 확인이 가능하고 혹시라도 차후 문제가 발생할 시에는 그 정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비스보다 안전한 측면이 있다. 또한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평점이나 리뷰, 피드백을 작성하면서 해당 서비스의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다. 결국 스마트폰의 보급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사람들이 가족 밖의 영역에서 타인과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두 번째, 서비스 생산자들이 가족 단위보다 개인 중심의 니즈(needs)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독신생활자는 시장에서 각광받는 소비자가 아니었다. 1인 가구의 생활 방식에 맞는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형마트의 보편화로 묶음판매가 대세를 이뤘다. 김치찌개 하나를 끓이려고 6개들이 참치캔 묶음을 사야 하는 식이었다. 개별 포장된 물건은 단가가 현격히 비싸기 때문에 결국은 버리게 될 것을 알면서도 묶음판매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1인 가구의 증가로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편의점의 가파른 성장세다. 편의점산업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수는 3만1611개로 지난해 처음 3만 개를 돌파했다. 이는 전년 대비 12.5%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에는 3000개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편의점 시장의 매출 규모는 20조4000억 원으로 2011년 10조 원을 넘은 후 5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대형마트의 성장세는 현격히 둔화됐다.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1993년 1호점을 낸 이래 올해 처음으로 신규 점포를 내지 않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편의점 매출은 전년 대비 18.2% 증가했으나 대형마트는 1.4% 감소했다.

마지막으로, 공유경제의 부상은 소비 철학이 ‘소유’에서 ‘공유’로 변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 변화는 자발적일 수도 있고, 비자발적일 수도 있다. 인권, 환경, 평화 등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지만 취직난과 생활고로 소유 자체가 어려워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공유경제의 가치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아닐 수 있다. 공유경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혹은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업체들이 전적으로 탈물질적 가치 창출을 사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영리하게 틈새시장을 마련해낸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인 우버(Uber)를 예로 들어보자. 우버는 서비스 제공자(운전자)와 이용자(탑승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사업체다. 쌍방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 우버의 수익 모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버에 개인사업자로 등록했고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지역에서 운전자로 활동했다. 우버는 실업자나 퇴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차량 공유를 통해 도시 환경 개선에 일조하는 등 비록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공유경제 기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말이 좋아 공유경제지 결국은 노동력을 저가에 착취하고 노동자의 권익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악덕 업주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유경제는 이미 사라졌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프랑스의 공유경제 싱크탱크인 위셰어(Ouishare)는 지난해 “3년 동안 협력경제(collaborative economy)에 대해 연구하고 이 개념을 본래의 취지에 맞게 전파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헛소리(bullshit)’로 변질됐다”며 “협력경제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결국 공유경제는 플랫폼 업자의 배만 불리는 악덕 관행을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해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공유경제의 이러한 허점 때문에 등장한 개념이 바로 ‘긱 경제(gig economy)’다. ‘긱’은 원래 1920년대 미국 재즈공연장 주변에서 단기 혹은 하룻밤 계약으로 연주자를 섭외해 공연하던 관행을 의미한다. ‘긱 경제’란 필요에 따라 기업들이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을 쉽게 고용하고 해고하는 형태의 경제다. 노동력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시스템이지만 계약서 한 장 없이 그날그날 스마트폰 앱이 연결해주는 대로 노동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 입장에선 매우 고단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공유경제 서비스를 신(新)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하고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에 걸림돌인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공약집에서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가의 ‘정보, 공간, 자원’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가 공유경제를 육성하겠다고 하면서도 공유경제의 부상을 주도한 1인 가구의 증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공유경제의 최대 소비자인 1인 가구가 감소하게 되면 공유경제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는 비정규직 축소를 대표 정책 브랜드로 추진하고 있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유경제는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1인 가구의 증가를 둘러싼 정부의 고민은 가족의 해체와 저출산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공유경제가 부추기는 양극화의 문제와 다인(多人)가구에 비해 경제적으로 취약한 1인 가구가 양극화의 그늘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결혼과 출산 및 양육은 이득보다 희생이 더 요구되는 ‘마이너스 함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행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 기반과 능력이 탄탄한 사람들일 것이다. 결국 양극화에 가장 대책 없이 노출되는 취약계층이 결혼을 포기하게 되고, 이들은 공유경제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생활비를 절감하고, 그렇게 해서 활성화된 공유경제는 다시금 양극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정부의 방침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김수경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연구위원 sookim@kinu.or.kr

필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던 중 도미,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생각해볼 문제

1 1 인 가구의 증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프레임이 20, 30대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 현실과 달리 실제 최근 1인 가구의 증가를 주도한 것은 사실상 40, 5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혼을 했거나 배우자가 있지만 혼자 사는 가족 유형을 유지하는 중년이 많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2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 트렌드가 앞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트렌드가 시니어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를 양산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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